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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A (life&intrest)/reading

달콤한 나의 도시: 서른한살,,,사랑이 또 올것 같니?

간만에 소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이효석 문학상/ 현대문학상/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작가 
'정이현'의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드라마를 진즉부터 찾아 보려고 맘먹고 있었는데 (주연배우였다는 최강희와 지현우를 아주 좋아한다),

지난번에 읽은 '당신, 충분히 괜찮아'라는 책에서 추천 도서로 이책이 올라와 있기도 했고 해서 우선 책부터 보기로 했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책이 드라마보다 마음에 드는 점은 심리전달력이다. 

드라마는 감정이 우루루 몰리고 말지만, 책은 심리상태를 글로 자세히 묘사하다보니, 좀 더 인물을 이해하게 되는 기분이 든다.

소설의 주인공은, 나이 서른하나, 직장생활 7년차, 서울의 한쪽 구석에 사는 평범한 여자 오은수.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만 놓고 보자면 나와 은수는 하나도 닮지 않았는데, 어째 은수의 속마음은 나의 속마음과 꼭 같은걸까? 이 나이대의 여자들은 원래 다 이런건가?

작가는 아마도, 살면서 수없이 마주하는 사소한 일들에 대해, 실은 자신도 잘모르겠는,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별 신경도 쓰지 않고 사는 그런 미묘한 사람의 심리들을 글로 풀어내는 탁월한 재주가 있나보다. 소설 속 은수의 생각, 은수의 망설임들, 모두 나역시 한번쯤은 있었더랬다.
예를 들자면 이런거.

 

-원래 술이 오르면 나는 눈웃음의 횟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혀가 짧아진다. 주로 마음에 드는 남자와 단 둘이 마실때 그런데, 의도적인 건지 아닌건지는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 이순간 나는 간절히 염원한다. 태오가 내 친구 때문에 불편하지 않기를, 악의 없을지라도 내친구가 태오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질문 같은 것은 던지지 않기를. 그것이 그에 대한 나의 사랑 때문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를 지키고 싶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요런상황? 늘 궁금했더랬다. 내가 취하는 지금 이 행동이 내가 의도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것인지, 본인 스스로도 헷갈릴 때가 많지 않은가.

이렇게 소설 속 은수의 생각과 습관, 행동들은 내 평소의 모습과 어렵지 않게 겹쳐지고, 그 결과,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본디 소설이란 허구의 이야기라고 알고 있건만, 이건 뭐 현실이다. 나인걸. 내 얘기 하고 있잖아. 그런 느낌이었다.

 

결국 이 소설에서도 화두는 '서른살무렵의 여자'다. 역시나 기준은 '서른살'.
아, 정말이지 요즘 서점에 갈때마다 느끼는 건데, 서른살 여자에 관한 책은 뭐이리 많은가.
물론 실제 서른근처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는 나에게는 환영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겠지만(참고서적이 지천에 널려있다는 뜻일테니까.) 어쩐지 씁쓸한 마음은 역시나 지울수 없다.
문득 서른이 지나고 마흔이 되었을때는 읽을만한 책이 없는게 아닐까 싶을 지경.

 

어쨌든 잊고있었던 소설의 재미를 다시금 일깨워줬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아주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허리가 뻐근해져와서는 한쪽손으로 허리를 부여잡으면서도 여기까지만, 여기까지만.... 책장은 자꾸만 넘어갔다.
책보느라 내려야 할 지하철역을 지나친 것도 꽤 오랫만이었다.
왜 잊고 있었을까. 소설이란  현실과 분리되는 세계가 아니란거. '만들어진 이야기이지만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라고 학교다닐때 열심히 배워놓구선.
때로는 자기계발서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것 보담도 소설을 빌어 이야기하는 삶의 지혜가 더 내 마음을 잘 헤아리고 다스려 줄 수도 있다는 거.

책장이 빠르게 넘어간 것에 비해 소설의 결말은 썩 맘에 차지 못했다. 난 해피엔딩을 좋아해서.
이 소설이 그럼 새드엔딩이냐하하면 또 그렇지는 않지만, 해피하지는 못한 마무리였으니까.
현실적인 이야기를 바랐던 주제에 그래도 결국은 해피엔딩이 좋아.라는게 영 앞뒤가 맞지는 않는 이야기지만,  책속의 세계에 꽤나 몰입하는 타입인 나로서는 책장을 덮고 현실로 돌아왔을때, 슬픈 기분이 드는 책들은 아무래도 마다하고 싶은 마음이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해피엔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 다시 보래도 볼 것 같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래왔다. 선택이 자유가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항상, 뭔가를 골라야 하는 상황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 진땀을 흘려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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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갈팡질팡하는 내 삶에 내비게이션이라도 달렸으면 싶다.

"백미터 앞 급커브 구간입니다. 주의 운행하세요." 인공위성으로 자동차 위치를 내려다보며 도로 사정을 일러주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처럼, 내가 가야 할 길이 좌회전인지 우회전인지 누군가 대신 정해서 딱딱 가르쳐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커다란 걸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상사 뒷담화로 아침을 시작하고자 하는 직장 선배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와 같은, 사소하고도 예민한 문제의 정답부터 제발 좀 알려주면 좋겠다.

출근길, 건물 앞에서 만난 장선배는 다짜고짜 내 팔짱부터 꼈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착하고 다정하며 성실하다는 온갖 장점이, '눈치가 없다'는 단 한 가지 단점 앞에서 죄다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 사회생활의 무서운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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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이 세상에 인간의 힘으로 이해 못할 인간의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이틀만 지나면 나는 서른두살이 된다. 고작 서른둘이다. 얼마나 더 살아야, 불쑥불쑥 들이닥치는 생의 불가사의에 대해 의연하게 찡긋 윙크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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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모녀지간이 그렇듯 우리는 몹시 친밀한 편이다. 아니, 친밀하는 표현은 어색하다.

적확한 형용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질긴 애착으로 뒤엉켜 있는 것이 엄마와 딸의 관계인 것이다. 

내가 그녀의 자궁 속에 잉태된 오렌지만 한 아기였을 때부터, 우리는 격렬하게 다정했고 자주 싸웠으며 소리 소문 없이 화해했다.

나에게 엄마는 말랑말랑하고 폭신폭신하고 축축한 사람. 그리고 생리 첫날, 냉랭하게 식은 내 아랫배에 손을 집어넣어 찜질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영원히 그러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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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인간에게 감당할 만큼의 시련만을 준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주워들었다. 

나도 아직은 감당할 수 있다. 틀림없다.

운명과 시련이 한통속으로 나를 속이려들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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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엔, 서른살이 넘으면 모든게 명확하고 분명해질 줄 알았었다. 그러나 그 반대다.

오히려 '인생이란 이런 거지'라고 확고하게 단정해 왔던 부분들이 맥없이 흔들리는 느낌에 곤혹스레 맞닥뜨리곤 한다.

내부의 흔들림을 필사적으로 감추기 위하여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일부러 더 고집 센 척하고 더 큰 목소리로 우겨대는지도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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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함께 지내지만 정말이지 나는, 나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객관적이고 가차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30대 여성 오은수는 어떤 모습일까.

*가진 것 - 입가의 팔자주름, 알량한 통장잔고, 깔고 앉은 원룸 전세금, 반 의절 상태인 부모, '한심하게 살기 대회'  대표 선수 같은 친구들, 사랑에 관한 몇가지 실속 없는 추억들,

*못 가진 것 -  남편, 아이, 직장.

겨우 세 가지가 부족할 뿐인데, 왜 이렇게 처참한지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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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두 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우울한 자유일까. 자유로운 우울일까.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달콤한나의도시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정이현 (문학과지성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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