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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A (life&intrest)/reading

백영옥장편소설[스타일]: 세상의 다양한 스타일들과의 화해-

서점에서, 도서대여점에서,  몇번이나 이책을 눈여겨 봐 두었는데 매번  다른 책들에 밀리다가 이번에 읽었다.
순서가 뒤로 밀린 이유는 그냥 표지와 제목때문.
스키니진을 입고 멋들어진 빨간 가방을 든 몸매 좋은 아가씨의 뒷태를 그린 표지 일러스트와 '스타일'이라는 제목을 보고,
이책이 뭔가  트렌디하고 스타일리쉬한 이야기를 다루었을것이며,
그런 소설들은 재미있게 읽히긴 하겠지만, 스타일리쉬한 삶을 살고있지는 못한(원하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공감대신 상대적인 박탈감을 줄 확률이 높고, 별로 내게 남기는 메시지도 크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때문이었다.
역시나 편견은 좋지 않다. 왜 자꾸만 눈이 가는데도 책내용이 뭔지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을까?
빌린 책이었던 까닭에, 책 읽는 속도가 느린편인 나는 빠른시간내에 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늘 하던 앞뒤 표지의 글귀들이나 작가의 말등등 먼저 읽기를 건너뛰고 곧장 본문 제 1부를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소설을 반이나 읽을때까지도 나는 이것이 그냥 힘든 사회생활과 맘대로 안되는 연애사에 지쳐있는 현대 도시 여성의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러나, 작가의 말을 빌자면 이 소설은 화해에 관한 성장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이서정처럼 나 또한 얽혀 있는 두 가지 욕망을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지 늘 고민한다.
프라다에 대한 속물적인 욕망과 제3세계 아이들에게 기부하고 싶은 선량한 욕망은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이 소설을 나는 감히 화해에 관한 성장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과거와의 화해, 원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과의 화해, 진정한 자기 자신과의 화해, 세상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다양한 스타일들과의 화해...."
_작가의 말 중에서.

'스타일'과 '화해' .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연관성이라곤 하나도 없어보이는 이 두 단어사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나는 온전히 이해는 못했지만,
이책이 화해에 관한 소설인건 맞다. 내 단순한 해석으로는, 대치될 수 밖에 없는, 그러나 둘다 포기가 안되는 욕망들 사이의  화해에 관한 이야기.
제목인 '스타일'을 주제와 연관짓기가 난 좀 힘들다. 작가로서는 고심해서 지은 제목일텐데, 안타깝게도.
주인공이 패션잡지기자인 관계로 나오는 용어나 주변 등장인물등등, 소설자체가 스타일리쉬한 내용이긴해서 제목이 아주 동떨어져 보이진 않는다고 생각하는게 고작.

패션지의 피처 에디터로 일했었다는 작가의 경력 덕분인지, 패션지 기자인 주인공의 직업적인 일상이 굉장히 리얼하게 표현된 것 같다.
에디슬리먼, 루꼴라, 포카치아...등등 패션/문화와 관련한 갖가지 전문용어(?)들이 자주 등장하고,
그들 세계에서나 알법한, '사진으로 찍었을때 가장 예쁘게 나오는 시계의 각도' 같은 디테일이 살아있는 표현들이 매우 흥미로웠다.
작가 프로필을 보니 74년생,나보다 8년 더 살았을 뿐인데, 작가들이란 참 다방면으로 박식하다. 패션지 기자였기 때문에 그런가?
아무튼 난 이래서 작가나 기자 친구가 꼭 갖고 싶은데, 내 주변에 그 쪽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패션지 기자! "한때 꿈꾸어봤으나, 나는 할 수 없는 일"로 분류된 수많은 직업들 가운데 꽤 상위랭크된 직업중 하나여서,
'사실 저 직업이 겉보기에 근사해보이나, 실상은 이렇게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묘사된 그 상황들 마저 굉장히 멋져보였다.
주인공 이서정은 스스로를 몹시 한심해 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는 몹시 프로페셔널한 멋진 여자였다.
치열하게 일하며 힘겨운 여러가지 일들을 처리하는 이서정에게 동경을 눈길을 보내던 나는,
소설 막바지에 이르러  그녀의 웬수였던 그남자가  실은 애틋한 과거를 함께 한 사람이어서 종국에는 오해를 풀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며,
또한 웬수였던 상사가 실은 그녀를 마음속으로 인정하고 밀어주고 있던 키다리아저씨 였다는 사실이 밝혀질때, 살짝 배신감이 들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소설의 주제인 '화해'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도, 내가 언제나 원하는 소설의 해피엔딩을 위해서도 필요한 설정이었건만,
'결국 그녀는 나와 같지 않아, 결국 그녀에게는 저렇게 기대하지 않았던 멋진사랑도 찾아오고, 상황을 뒤집어주고 원조를 쏟아줄 멋진 헬퍼도 나타나잖아!
현실의 나를 봐!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고! 역시 소설은 그래, 흔치 않은 일이니 이야깃거리가 되는 거겠지.'라는 삐딱한 생각도 좀  들었다.
그런데 책을 덮고 생각해보니, 저건 정말 나의 삐딱한 생각일 뿐이다.
이서정에게 멋진 사랑과 멋진 헬퍼가 찾아 든 것은 그녀가 그럴만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거다.
내게 그런 멋진 일이 일어나지 않는건, 내가 이서정처럼 멋진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지, 저게 소설이어서가 아닐거다. 
이서정은 사표를 세번이나 썼을지언정, 한 직장에서 7년을 치열하게 일했고, 그 와중에도 자신의 꿈이나 나아갈 바를 잊지 않고 사는 여자였다.
그에 비해 올해로 사회생활 4년째인 나는 일에대해서도, 취미에 대해서도, 꿈에대해서도 뭐하나 일정하고 진득하질 못했던 것 같다.
때마다 나름 치열하게 임했다고 생각했지만, 뒤돌아보면 좀 부족했는지도 모르겠다.

'스타일'은 우울하지 않은 소설이다. 읽는내내 처지는 기분이라곤 없다.그럼에도 생각을 하게 만든다.
깊은 생각에 빠지면 기분이 축 가라앉기 일쑤인 나에게는, 담담한 기분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 책이라는 점이 좋았다.

이 소설은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으로, 뒷 표지에는 심사평이 실려있다.

"스타일은 재기발랄한 작품이다.
젊은 세대들이 소비하고 들여다보기를 열망하는 음식, 패션, 섹스등의 세계를 매우 역동적이고, 수다스럽게, 대단히 잘 읽히는 문체로 그려냈다.
장을 이어나가면서 점점 흥미로움을 점층시키는 구성이 아주 뛰어나서 손에서 떼어놓기가 힘들었다는 점,
작가가 어떻게든 상처 받지 않고 더러운 세계를 견디면서 진정성을 지켜가려는 젊은이들을 자기 세대로 끌어안기를 전혀 피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하여 이 시대의 피상성, 깊이 없음을 쿨하게 잘 형상화했다는 점 등이 돋보인다.-"
_심사평

역시 심사위원님들. 핵심을 잘 집어주신다. 소설 '스타일'은  저렇다.

                                                                                                                                                 

원래 세상 모든 보스들은 '난 뒤끝 없어'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이 말은 '나는 대단히 뒤끝이 많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사회화가 덜 된 어린애들은 윗선들이 하는 말을 해석해내는 능력이 없다.
회사도 가르쳐주지 않는 냉혹한 조직의 생리란 보스가 모든 걸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논리, 이성, 상식, 성과, 인간성 같은 아름다운 말? 이런건 보스의 한마디는 끝장난다.
쟤, 이상하게 맘에 안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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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엔 왜 이렇게 잘난 노처녀들이 많은 거냐. 잘난 노총각들은 씨가 말랐고."

"그 잘난 노총각들은 우리 같은 노처녀들이랑은 안 놀거든."
"요즘 노처녀들이 어디 노처녀 같애? 나이 오십이 다 된 우리 편집장만 해도 보기엔 딱 30대 초반이야."
"모르는 소리! 남자들은 자기 여자가 어려지는 거 별로 안 좋아해. 그냥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거지."
과연 수컷들의 진실이란 자기 유전자를 전 지구적으로 퍼트려줄 젊은 난자들에게 향해 있는 것일까.
늙은 난자들의 교묘한 화장술이나 성형술을 알아보는 유전자 코드가 고릿적부터 핏속에 새겨져 있는 걸까.
이것이 자연이 정한 냉혹한 유전자의 법칙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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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었다. 상관을 향해 무조건 미소 짓는 병. 굳이 병명을 붙인다면 '후천성 스마일 증후군'쯤이 될까.

사회화된 인간의 정치적 행동은 이유 없는 슬픈 웃음 속에도 내포되어 있다.
정말이다. 나도 내가 싫다.싫어 죽겟다!
나훈아가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같은 노래 가사를 왜 만들었는지 눈물 나게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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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정말 잘 어울려. 아주 멋져. 어디서 산 거니?"

맙소사!
좋아하는 남자에게 5년만에 들은 칭찬이 몰래 훔쳐 입은 친구의 옷이라니. 한숨이 나왔다. 대체 이걸 어떻게 뺏어온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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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라마의 통속성이 좋았다. '통속通俗'이란 세상과 통한다는 말 아닌가.

그 좋은 말을 사람들이 한껏 폄하해 쓰는 건 어쩐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적 만족을 느끼며 니체나 들뢰즈, 지젝을 읽고, 타르코프스키나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를 비평하듯 보는 사람만 있는건 아니다.
작은 텔레비전 모니터 속에서 삶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울고 웃게 만드는 힘, 내 꿈도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을 거란 믿음,
세상이 어쩌면 살만한 곳일지도 모른다는 희망, 노인과 아이를 동시에 열광하게 하는 것,
나는 이것이 드라마가 가진 통속의 힘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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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나는 기부를 한다.

정기적으로 들어가는 기부금 때문에 엄마에게 돈을 꾼 적도 있다.
이미 나사가 1천개도 더 빠졌을 거란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하지만 별 수 없다.
굶주려 뼈만 남은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무너지고, 새로 나온 마놀로 블라닉을 보면 그게 갖고 싶어서 잠이 안온다.
이것도 저것도 해야겠고, 이쪽도 저쪽도 놓칠 수 없다.
내겐 이 두 가지 욕망이 모두 다 중요하다.
그래서 남들 놀 때 눈에 불을 켜고 일하고, 일해서 번 돈으로 열정적으로 쇼핑한다.
영화광이 히치콕의 희귀DVD를 사 모으고, 애서가가 절판된 펭귄북스 시리즈에 열광하듯 그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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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란 원래 기다리면 오지 않는다.

기다리면 오지 않는 것은 왜 이리 많을까.
애인, 키스, 편지,생일선물, 합격통보, 1등 로또당첨.
기다리지 않아도 꼬박꼬박 날아오는 건 카드 청구서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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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영악한 인간은 자기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큰소리로 울지도 않는다.

조용히 사람의 뒷목에 칼을 쑤셔 넣을 수 있는 사람은 크게 웃지도 않는다.
그런 인간들에게 커다란 울음이나 웃음은 오히려 자기감정을 속여야 할 때나 사용하는 과장된 제스처이며 가면인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소문을 모르는 척하고 있었지마느 실은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참 공평도 하시지.
나는 죄를 짓자마자 벌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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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며 산다. 이게 옳은 일일까.이런 삶이 과연 의미 있는 것일까.

하지만 누군가는 내가 만든 잡지를 보며 꿈을 꾸고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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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자신의 몸을 사랑하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얘기라면,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으로도 납득하지 못하겠다.

나라는 여자는 아직도 건강에 나쁘니까 담배를 끊으라는 얘기보단, 피부에 최악이니까 담배 끊으라는 피부과 의사들의 협박이 조금 더 사실적으로 들린다.
나라면 키가 작으면 하이힐을 신고, 피부에 자신이 없으면 화장을 하라는 빅토리아 베컴의 말에 기꺼이 한 표 던지겠다.
그렇지만 성형중독으로 하루가 다르게 일그러지고, 미라처럼 말라가는 미세스 베컴의 부푼입술과 갈비뼈에선 섬뜩함을 느낀다. 결국 모든 건 균형이다.
나는 여전히 담배를 피운다. 서른 한 살짜리가 꼭 가져야 할 만한 보험이나 그 흔한 펀드 하나 없다.
하지만 나는 매일매일 담배를 피우며 비타민을 챙겨 먹는다.
카드값에 낑낑대면서 난치병 아이들과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기부도 한다.
유기농 커피를 파는 카페를 취재한 후, 아이들의 노동을 착취하지 않는 윤리적인 커피 농가들을 위한 모금에도 앞장선다.
이제 무엇이 윤리인지는 고민하지 않겠다.
그런 건 나보다 윤리학자가 더 열심히 고민할 것이다.
내겐 에르메스의 매혹적인 오렌지색 쇼핑백과 버림받은 아이들의 배고픔을 책임지고 싶은 욕망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매달 쌓여가는 청구서에 가랑이가 찢어진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마뜩찮은 얼굴로 날 쳐다보는 엄마에겐 이렇게 말한다.
난 요가랑 필라테스를 오래 해서 가랑이 찢어지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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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전히 풀기 어려운 문제 같다.

그저 답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두를 안쓰러워 할 뿐,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저 평화로운 한강 다리도 어느 순간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 이 시간,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해가 풀리고 그래서 기자 선배를 이해하게 되었다. 라고도 쓰지 않겠다. 나는 여전히 그녀를 모른다.
하지만 내가 받은 상처만큼 그녀 역시 내게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이젠 적어도 소문속에서, 그녀가 나를, 내가 그녀를 오해하도록 내버려두진 않겠다.
그리고 엄마가 좋아했던 이 말을 두고두고 기억하겠다.
미워도 다시 한 번!

                                                                                                                                                




글귀 하나하나가 온통 체크리스트인 자기계발서도 아닌데, 이 책은 온통 접은 자국 투성이다.

큰일이다. 이 책이 빌린 책이라는 사실을, 이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야 다시 생각해낸 정신 놓은 나.
저 수많은 접은 자국들을 대체 어찌하면 좋을까.
책 험하게 보는 습관을  빠른 시일 내에 고쳐야 할 것 같다.


++ 이 책 '스타일'을 보면서 얼마전 유행하던 '김혜수언니'와 '엣지'를 떠올렸었다. 그 드라마 보지도 않았고 내용이 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 글을 다쓰고 나서 인터넷 검색하다가 알아버렸다.

이게 원작 소설이었구나.;;;;;;;;;;;;;;;;

요즘은 어째 드라마 원작 소설들만 보게 되는것 같네.++


스타일제4회세계문학상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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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백영옥 (예담,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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