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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A (life&intrest)/reading

공중그네

이책이 내 책장에 꽂혀있은지가 한 3,4년쯤 된 것 같다.
분명히 재미있는 책인데 이상하게 자꾸 읽다 말고 또 읽다 그만두고...무려 3,4년을 묵혀서 이제사 끝까지 다 읽게 됐다.

그바람에 이 책에 실린 단편 다섯개중 앞의 세개는 족히 서너번씩 읽었지 싶다.

정작 이번에 읽기시작해서는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는데 신기한 일이다.

그러고보면 책도 내게 맞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한참을 손이 가지 않던 책인데 갑자기 너무 재밌게 읽어내려가 지는가 하면,

이전에 너무 즐겁게 읽었던 책인데 다시 보면 도무지 별로인 경우도 많았으니까.


아, 생각해보니 내가 한동안 소설을 읽지 않았었다. 소설속 허구의 세계에 과하게 빠져드는 나를 좀 경계했었더랬지. 그러고보니
이 책 역시 애초에 내가 읽으려고 샀던 책은 아니었다.

생각이 나서 책 앞표지를 들추어보니 남동생이 군대시절 있었던 부대의 보안성 검토필 도장이 쿵하니 찍혀있다. 날짜도 있네, 07년 10월 22일. 3년하고도 두달쯤 전이구나. 와, 정말 시간 빠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동생이 군대에 있을 때 읽을만한 책 좀 가져다 달라기에, 내가 강원도까지 면회가서 날라다 준 책이었다. 그냥 무난한 게 좋겠지 싶어서 서점의 당시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던 것들 중 제일 '재미'가 있어보이는 걸로 골랐더랬지.
이 책을 가져다 줬을때 표지를 본 동생이, "뭐야, 공주그네? 제목이 이상해."라고 말해서 무지 웃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표지의 제목 글씨체 때문에 대충 보니 그렇게 읽혔던 모양이었다.

별로 두꺼운 책도 아니고, 활자도 큼직큼직하니, 부담없는 단편이고 만만하게 읽기 좋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동생은 금새 다 읽고선 재미있다며 내게도 추천을 해주었었다.

그래서 다음번 보았을때 도로 가져왔었는데 3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겨우 다 읽었네. 하하.

그렇다고 재미없는 책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매우 재미있다. 근데 왜 그리 오래 묵혔는지는...음, 나도 모를일.

얼마전 한 서점의 베스트코너에서 이책을 보았다.

우리집에서 무려 삼년을 끝까지 읽히지 못하고 있는 녀석인데, 그러니 나온지도 제법 되었을 이책이 아직도 베스트코너 한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게 신기했다.

문득, 제법 잘나가는 아이를 나 혼자 박대하고 있는것 처럼  괜히 미안한 맘이 들더라 말이지.

집에와서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웬걸, 내가 이걸 왜 여태 안읽고 박아둔거지 싶더라.

 

총 다섯개의 단편이 들어있는데, 각각 다른 내용이지만, 같은 인물이 계속 등장한다.

좀 심하게 특이한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라부',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개성만점 간호사 '마유미'.

다섯개의 단편은 모두 이 콤비 두사람이 있는 이라부 종합병원의 신경정신과를 찾아온 환자들의 이야기다.

요즈음 아무리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신경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은 뭔가 한구석은 심하게 이상할 거라는 생각은 누구나 여전히들 한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신경정신과에 실제로 갔느냐, 가지 않았느냐의 차이일뿐, 현대인들 대부분은 정신적 질병 하나씩은 안고 사는 것 같아. 일단 나부터도 그러니까.

나는 좋게 말하면 이성보다 감성수치가 높고....좀 예민하달까? 하여튼 세상에 존재하는 각종 무슨무슨 증후군, 무슨무슨 컴플렉스 대부분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신경정신과에 가본적이 없다.

그런이유로 신경정신과를 무대로 한 이 책은 내게 심히 공감되는 내용일 수 밖에 없었다.

모르긴 해도 아마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나같은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닐까? 

책 속에 등장하는 각 단편이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병원을 찾은 만큼 당연히 한가지씩 병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명의와 돌팔이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시는 엽기 정신과 의사 이라부는 매번 몹시도 희한한 방법으로 치료에 임한다.

우습게도 이책에 실린 다섯개 이야기 모두가 '이러이러해서 그 사람의 병은 고쳐졌습니다, 또는 고칠수는 없게 되었습니다.'가 없다.  언제나 말끔한 해피엔딩을 선호하는 내 입장에서는 참 애매한 결말들을 보여준다. 난 원래 이런거 매우매우매우 싫어한다. 항상 말하지만 내용 중간에 지지고 볶고 싸우고 뜯고 울고 불고 난리를 치더라도 책장을 덮을땐 기분좋기를 원하니까.

그런데 이 책의 이야기들은 이야기 진행내도록 주인공들이 줄창 짜증을 내고(이라부 때문에;;) 결국 영 애매한 마무리로 끝이 나는데도 기분나쁠틈이 없다. 이라부씨와 마유미가 쉼없이 즐겁게 해주니까. 그리고 애매하긴해도 이상하게 상쾌한 느낌이 드는 마무리랄까? 내 기준에선 좀 신기한 소설이다.

 

<고슴도치>:뾰족한 물건만 보면 오금을 못펴는 야쿠자 중간보스.

"야쿠자 일이라는 게, 말하자면 고슴도치 같은 거잖아. 항상 상대를 위협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지.

그런일은 누구든 지치게 마련이니, 그 반대급부로 끝이 뾰족하거나 예리한 물건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됐는지도..." 

 

"저, 요시야스씨, 내일 우리 병원으로 와. 특효약이 있거든."

이라부가 끼어들었다. 생글생글 미소를 짓고 있다.

"있습니까, 그런게. 그렇다면야..."

요시야스가 바짝 다가 앉았다.

"암, 가보면 좋지. 내 주치의는 명의니까."

솟구쳐 오르는 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세이지는 배를 움켜잡고 웃어젖혔다.

자기랑 같은 사람이 있다. 그녀석 역시 고슴도치다. 증상은 정반대지만, 근본적으로는 같다.

........

"세이짱뿐이 아니었구나. 예민한 야쿠자 선생이."

"조폭이란 게 원래 그런거야. 모두들 약한 부분이 있으니까 오히려 죽어라 뻗대는 거지."

몇년후, 자신은 평범한 쥐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헌데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공중그네>:어느날부턴가 공중그네에서 번번히 추락하는 베테랑 곡예사.

왜 자꾸 이렇게 꼬이는 거지. 남 험담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건 그야말로 신참 험담을 늘어놓으려고 찾아온 아니꼬운 고참 상사 꼴이다.

젊은 단원들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고헤이는 침묵이 두려워 줄곧 혼자 떠들어댔다. 서커스 단원의 정신상태 같은 것까지 설교를 늘어놓고 말았다.

30분 만에 도망치듯 나왔다. 돌아가는 길에 격렬한 자기혐오에 빠졌다.

그들은 지금쯤, 뒷말을 하고 있을 게 뻔하다. "그 사람, 대체 왜 그래?"라고.

그런 생각이 들자 비명을 내지르고 싶어졌다. 내 집이라 여겼던 서커스단에서 겉도는 존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사과는 빠를수록 좋다. 고헤이가 천천히 다가갔다.

"우치다씨, 주먹을 휘둘러서 미안합니다. 내가 그런 상태라는 건 꿈에도 모르고, 골탕을 먹인다고 오해했습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저도 아직 서툴러서..."

"천만의 말씀... 다른 플라이어하고는 능숙하게 잘 해내고 있잖아요."

"고헤이 씨는 퍼스트이니 저한테도 책임이 많은 것 같아 줄곧 고민했습니다."

순식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말의 힘을 새삼 깨달았다.

왜 조금 더 빨리 대화를 나눠보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가 새 친구도 다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장인의 가발>:장인이자 병원원장의 가발을 벗겨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젊은 의사.

"이케짱, 대학 졸업한 뒤부터 어른스러워졌다던데." 이라부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구라모토 무리가 한 얘긴데, 내 귀까지 들어온 거야. 노무라 교수 딸과 결혼한 후로 점점 더 착실해 졌다며. 예전에는 파티 사회자도 하고 그랬지,왜."

"구라모토가 그렇게 말해?"

"다들 그래. 재미없어졌다고.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억압받는 거 아냐?"

다쓰로는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학생 시절에는 여러 사람 앞에서 떠들어대길 좋아했다. 장난도 잘 쳤다.

"다시 한번 성격을 바꿔보면 어때? 아침마다 간호사 엉덩이를 더듬는다거나."

"바보같은 소리. 성희롱이라고 난리칠 게 뻔하지."

"그럼, 책상 서람 속에다 장난감 뱀을 몰래 숨겨둔다거나."

"간호사 센터에서 항의할 텐데."

"그런 행동을 1년동안 계속해봐, 그럼 주위에서도 포기해. 성격이란 건 기득권이야. 저놈은 어쩔 수 없다고 손들게 만들면 이기는 거지."

다쓰로는 말없이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동의하진 않지만, 이해는 간다. 뻔뻔스러운 인간은 그뻔뻔스러움을 주위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게 만듦으로써, 점점 더 뻔뻔스럽게 변해간다. 이라부가 바로 그런 경우다. 학생 때 이라부는 방귀를 뀌어도 "아아,이라부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꺼억"다쿠야가 트림을 했다.

"어멋,다쿠야!"하고 소리치는 히토미.

"꺼억!"다쓰로도 일부러 트림을 했다. 다쿠야가 키득키득 웃으며 재미있어 한다.

"그것봐, 흉내내잖아" 히토미가 잔소리를 했다.

"뭐 어때, 매너 같은 건 어른 되면 자연히 익힐 텐데."

"버릇되면 곤란하단 말이야."

"이봐. 체면 때문에 절절매고 사는 거 힘들지 않아? 꾸밈없이 소탈하게 사는 게 훨씬 편하잖아?"

"그게 다쿠야 트림하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어?"

"예를 들자면 그렇단 말이지. 아이 때부터 너무 공손하게 구는 것만 가르치면 궁지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져."

그때 텔레비젼에서 가발 광고가 흘러나왔다. 그것을 본 다쿠야가 "할아버지!"라고 소리쳤다.

잠깐 동안의 침묵, 히토미가 "푸훗"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지난번에 우리 집에서 할아버지가 쓰는 걸 봤던 모양이야."

"그래"다쓰로는 솟구치는 웃음을 참아내느라 어개를 들썩였다. 히토미도 입장이 난처했던 모양이다.

"모르는 척해 드려." "어어" "어, 왜 웃고 그래""당신도 웃으면서뭘."

다쿠야가 이상하다는 듯 올려다 본다. 다쓰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부부간의 거리까지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3루수>:어느순간 공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없게 된 베테랑 프로야구선수.  

"나을거야, 금방. 설마하니 공이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는 건 아닐 거 아냐. 기껏해야 90도 이내 오차일 테지."

"네엣? 90도 이내라뇨..."

"신경쓸거 없어, 신경쓸거 없다구. 아하하하."이라부가 다시 웃는다.

신이치는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어느날 갑자기 송구 공포증이 생겨 신경과 문을 두드렸고, 그리고 진찰을 받고....문제될 게 없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

"그건 그렇고 반도씨, 어릴 때부터 야구가 특기였어?" 이라부가 물었다.

"네에, 그야 프로야구 선수가 됐을 정도니까."

"난 야구만은 영 소질이 없었던 거 같아."

야구만은? 이라부의 체형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당신은 스모말고는 할 만한게 없을 텐데.

 

"반, 하기야 넌 줄곧 평탄한 길을 걸어오긴 햇지."

"무슨 뜻이야?"

"고등학교에서나 대학에서나 늘 스타 선수였잖아. 고시엔에서는 끝내기 안타를 날리고, 6개 대학 리그에선 베스트 나인으로 선정되고...프로에 들어와서도 1년만에 레귤러 자리를 차지했고, 올스타 고정 멤버고..."

"놀면서 그렇게 된 거 아냐." 쉽게 말하는 태도에 은근히 화가 났다.

"그야 그렇지. 노력의 산물이겠지.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복 맣은 야구 인생이다. 좌절한 적도 없이 여기까지 온 거잖아..'

"그럼 입스인가 뭔가 하는 게 좋은 경험이란 말이야?"

"시비걸지 마라. 그런 뜻이 아니잖아. 하지만 순조롭게만 지내온 사람한테는 보이지 않는 게 많은 법이야. 내가 줄곧 2군 생활이었던 건 잘 알지? 그들 중에도 입스는 있어. 인코너를 못 치는 녀석. 견제구를 못 던지는 녀석, 개중에는 투수한테 공을 못 던지는 캐처까지 있다구.

네가 스로잉 입스를 모른다는 걸 알았을때, 난 절실하게 느꼈다. 아아, 반도 신이치는 이제껏 다른 세상에 살았구나. 밑에서 악전고투하는 무리는 보이지도 않았던 거구나,라고."

"사람을 그렇게 냉혈인간 취급하기냐!"

"내말이 맞잖아. 얘기를 가만 들어보면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자기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질 않아. 그러니까 일단 톱니바퀴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고치기가 어렵지."

 

"왜 그래, 반도 씨.  기운이 영 없네."

"있을 리가 있습니까. 저는 입스 때문에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쳤다구요."

"신경쓸 거 없다니가 그러네."

"신경이 쓰입니다."

"그런말을 하면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돼."

"...무슨 소리죠?"

"전에 그런 환자가 있었거든. 걷는 법을 잊어버린 환자. 오른발을 내딛으면 오른손이 따라 올라가는 거야. 로봇 걸음걸이였지."

머릿속으로 상상해봤다. 꿀꺽 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냐, 안돼. 이제 자신은 상상만 해도 실제로 그렇게 되어버리고 만다.

"반도씨, 한번 걸어봐. 제대로 걸을수 있어?

"왜 자꾸 그딴 소리만 하시는 거죠?" 턱을 쑥 내밀며 따지고 들었다. 그러나 혹시나 싶어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어떻게든 안심하고 싶었다.

일어서서 발아래를 내려다본다. 대부분 오른발이 먼저 나가니까....첫발을 내딛는 순간. 동시에 오른팔이 앞으로 나가고 말았다.

"으아~악!"비명을 질렀다. 자신이 로봇처럼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하하하."이라부가 배를 움켜쥐고 웃어댔다. "내가 뭐랬어. 신경쓰면 안 된다니까."

 

은퇴하면 동네 야구팀에 들어가자. 이기든 지든 웃는 얼굴이 사라지지 않는 팀으로.

하지만 그것은 훨씬 뒤의 이야기다. 적어도 앞으로 5년은 프로로 뛰고 싶다. 입스는 정면으로 맞서 이겨내면 된다. 이라부의 말대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여류작가>:이전에 쓴 내용인 것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8년차 유명로맨스소설작가.

문득 책꽂이에 시선이 멈췄다. 한가운데 자기가 쓴 저서가 나란히 꽂혀 있는데, 그중 단 한권만 두툼하다. 저거로구나, 내 우울함의 근원. 2천매가 넘는 대작으로 제목은 '내일'. 아이코의 역작이다. 구토증의 원인은 알고 있다. 그 책이 팔리지 않은 게 여태껏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작가 생활 5년째에 그 책을 썼다. 공들여 취재를 하며 온힘을 다해 쓴 작품이다. 가벼운 연애소설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영혼을 흔들 만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보람은 있었다. 출간하자마자 여러 지면에서 소개했고, 대부분 절찬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쿠라까지 흥분한 목소리로 "이거 걸작인데!" 라며 전화를 걸어왔다. 아이코는 충만한 성취감을 맛보았다. 그걸로 자신도 변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팔리지 않았다. 기존 독자들에게는 완전히 외면당해 재판을 찍지도 못했다. 전문가들에게 호평을 받아도 장사로 연결되지 않는 냉혹한 현실을 통감했다.

아이코는 의욕이 꺽였다. 쇼크가 너무 큰 나머지 반년 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이코는 최근 들어 나타나는 기억 혼란에 대해 설명했다. 소설을 쓰려고 하면 혹시 과거에 썼던 소재가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견딜 수가 없다고. 몇 번을 확인해도 그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아아, 그건 기억 문제가 아니라 강박증이지." 이라부가 태평스럽게 말했다.

"강박증?"

"응, 문을 잠갔는데도 외출해서 잠그지 않은 것 같아 불안해한다거나. 흔히 있는 일이야. 특이한 경우는 자기가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지 않았나 싶어서 매일 주위 사람들에게 묻고 돌아나니는 사람도 있고."

아이코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구토증에 강박증이라는 혹까지 덧붙이다니. 도대체 자기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된 걸까.


<옮긴이의 말>옮긴이:이영미

완벽주의자는 있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겉으로는 그렇게 보여도 속까지 그런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더러는 가벼워 보이던 것, 하찮던 것, 사소한 성격적 결함이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지는 수가 있다.

그렇게 되는 계기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알 수 없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만들어 쓰고 있는 가면이 어떤 방패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쿠다 히데오의 이 소설들을 읽다 보면 가면 뒤에 있는 자신의 참모습을 들킨 것처럼 뜨끔한 경우가 있다. 어찌 보면 심각할 수도 있을 주제를 형상화하는 그의 능력은 탁월하다. 

아이와도 같은 순수함과 충만한 호기심으로 살아가는 이라부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세상이니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살아가라는 충고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충고는 무겁게 짓누르는 것이 아니다.

웃음을 만들어내면서 작가는 자신을 지키고 추스를 수 있는 존재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계속 살아온 무리에서 떨구어진 느낌에 고민하는 곡예사를 보면서는 여태 거쳐온 직장들속에서 내 자리를 찾지 못해 불안해하고, 그 불안감에 안 해도 될 실수를 해댔던 나를 발견했고,

처가의 품위에 맞추려 자신을 죽이는 대학교수를 보면서는, 쓸데없이 이력이나 주위사람들 눈치에 얽매여 있어보이려 발버둥치던 나를 봤다.

강박증에 시달리는 여류작가는 꼭 나인듯 해서... 소설 속의 인물일 뿐인 그녀가 괜한 신경질을 부리고,주변을 불편하게 할때면 나까지 부끄러워졌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괴리에 대해 분한 마음에 내가 지금 가진 것은 보지도 못하고, 쓸데없는 강박증이나 달고있는....

음, 정말 이런사람들이 많은 걸까?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 걸 보면.

그렇게 생각하니 좀 편해지는 것 같은 못된 마음이 든다. 난 비정상이 아니야. 라는 확인같은거.

나는 이런 내가 문제라고 느낀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숨길 수 있다면 좋겠다.

옮긴이의 말처럼,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숨겨가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난 이제 내가 문제인가 아닌가, 난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비정상이라면 대체 어떻게 고쳐야 하나 라는 고민은 그만둬도 될 듯 싶다. ...다들 그런다잖아.

 

공중그네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일반
지은이 오쿠다 히데오 (은행나무,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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