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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A (life&intrest)/reading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지난 주, 총 20부에 걸쳐 방영되었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 끝이 났다.
오랫만에 시간을 챙겨서 본 드라마였는데, 아쉽기 그지없다.
성균관 스캔들이 없는 이번주 월요일,화요일이 어찌나 허전하던지...
하지만,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보다도 더 재미있었던 것이 이 드라마의 원작인 소설<성균관유생들의 나날>, 그리고 그 후편격인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이었다. 


전반적인 흐름이 어떻고 문체가 어떻고 간에 일단 재미있는 소설로는 최고.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원작소설이지만,
난 드라마를 먼저 보기 시작했었고,  원작과 드라마 내용이 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창 재미나게 보고있는 드라마와 혼동이 올까봐 당장 읽을까 말까 심히 망설였었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자리잡은 이 책들이 눈에 들어올때다 정말이지 심히 유혹을 느끼면서도, 드라마가 끝나면 보려고 참고 또 참고, 아껴두었었는데....그랬는데...
 ............ 사촌동생의 노트북에 있는 떡하니 있는 텍스트본을 보고는 그만 홀려버리고 말았다.

고이고이 내MP에 옮겨 넣어두고, 드라마 호흡을 따라 천천히 읽으려고 했으나...그랬으나...............

이건 그럴수있는 소설이 아닌걸!
너무 재밌어서 결국 정신줄 놓고 주욱주욱 읽어 버리고 말았다.

내가 좋아라하는 사극풍에, 또한 좋아라하는 잘난 남자들이 줄줄이 등장해 주시는 은혜로움에,

유머있고 발랄한 이야기 진행가운데서도 때때로 등장하는 진지한 내용들이 부자연스럽지 않게 스며들어 있어주시는 완전 내맘에 쏙 드는 소설이었던 것이다.

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애청자였다. 걸오앓이, 중기홀릭의 일원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더 재미나더라. 
특히 내가 좋아라 하는 걸오도 여림이도 , 소설 속 인물들은 한층 더 매력적!! 
실체가 없는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설정자체가 드라마와는 미묘하게 다르다.

걸오의 경우, 짐승남이신건 맞지만, 유아인의 걸오보담 좀 더 애같고 좀 더 버럭거리며,

훌륭한 문장가인건 맞지만, 소설속 걸오는 사실 오골거리는 꽃내폴폴 사랑시!에 상당한 재능을 보이는 인물이라는거.

또한 소설의 걸오는 좀 더...... 음...아니 걸오네 집안 자체가 좀 개그시라는.
드라마의 걸오아빠는 너무 근엄하셔. 소설에서는 상당히 귀여우신데 말이지.
뭐 그런 소소한 차이들이 좀 있다.

물론 내용도 좀...다르고.
초반부에는 순서는 좀 바뀌었을지언정, 주요 에피소드들은 그럭저럭 비슷하게 가더니,
이 긴-이야기를 20부에 넣기는 아무래도 무리였던지 후반부의 드라마 스토리는 내맘에는 썩 차지를 못했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규장각....>도 계약 하고 시즌2를 갔어야 했다는 생각.
 

이 소설은 내용의 전개보담도 캐릭터에 빠지는 느낌이다.
그 개성강한 캐릭터들과 무려 4권을 함께 하고 나선, 그들에게 정이 담뿍 들어버렸다. 심하게.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각각의 분명한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주인공격인 잘금 4인방이 각각 나름대로 너무 매력적인 인물들이라,
소설의 내용을 읽고싶어라기 보다는 그들의 생활을 보고싶어. 잘금 4인방이 보고싶어! 라는 느낌으로 자꾸자꾸 찾게 되더란 말이지.

총 4권 분량의 긴 이야기가 모두 끝나던 날엔 이제 재신이랑 용하를 더 볼 수가 없네....싶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으니까.

소설을 워낙 빠르게 읽어버린 관계로 소설을 다 읽었을 때에도 드라마는 아직 중반즈음이었으니,
이후 드라마'성균관 스캔들'로 그나마 아쉬운 마음을 달래긴했지만....
유아인과 송중기의 걸오와 여림도 충분히 귀엽고 멋지지만,난 소설속의 잘금 4인방을 너무 사랑해버린 관계로 충분한 만족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아...........걸오와 여림이를 다시 보고싶다.

규장각 다음의 후편은...............절대 안 나오려나?

성균관 나오고 규장각 나왔으니, 잘금4인방이 정승하는 거까지 또 나왔으면 좋겠다는.












 가랑 이선준

"귀형께선 조선을 변화시키고 싶으신 겁니까?"

그녀의 질문에 선준은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그 속에는 고민도 엿보였다.


"난 변화를 시키려는 게 아니라, 단지 비난만 하고 끝내는 무능은 저지르고 싶지 않을 뿐이오.

세상에는 완벽한 정책은 없소. 보다 나은 정책이 있을 뿐이지,
그러니 그 어떤 정책이라도 비난이 따를 수밖에 없소. 그 비난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보다 나은 조선을 위한 정책을 알고 싶소.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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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단둘 일땐, 김 도령 말투는 싫대도...."

"지금 이 판국에 아랑이라고 부르고 싶겠습니까?"

"아, 알았소. 내가 모두 다 잘못하였소."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하는 그런 말씀은 조금도 반갑지 않습니다."

"춘화도 본 것이 뭐가 그리 큰 잘못인지 모르겠소."

바른생활 사나이, 이선준도 남자다.
여자가 화나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그저 일단 다 잘못했대지..;;;
우리 똑똑이 가랑 도령, 연애는 참 못하는 거 같애.
그래도 능력있고 인물까지 잘났으니 봐줘야지 어째-_-













대물 김윤식(김윤희)

 


조그마한 놈이라면 계집 같은 유생을 말하는 건 안 봐도 뻔했다. 그런데 그 조그마한 놈이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그 걸오의 턱에 주먹질을 하다니, 이보다 기괴한 일이 또 있겠는가.

"와하하, 김윤식! 정말 걸작 하나 들어왔구나. 대물이야, 대물. 으하하하."

여림이 김윤식에게 별호 '대물'을 내리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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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앞으로 뭐 먹고 사실 거에요? 이 이불 한채에 얼마 되지도 않는 전 재산을 털어 넣었잖아요."

"걱정마라. 산 입에 거미줄 치겠느냐? 이제부터는 먹고 사는 건 내가 다 알아서 할 터이니, 넌 앞으로 있을 네 걱정만 해."

윤희는 입에서 다시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언제나 '산 입에 거미줄 치겠느냐?'라는 말을 입에 달고 계시지만 그 말에 대한 책임은 일절 지지 않는 분이시다. 이번에도 당장 먹을 죽 값까지 탈탈 털어 나가서는 대책 없이 솜부터 사가지고 들어와 윤희를 기함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 후로 끼니를 해결 한건 이번에도 윤희의 몫이 되고 말았다."




























여림
 구용하

 


"일거리를 만들어 준다고?

글쎄다. 이놈의 신분 아래에 묶여서는 그도 힘들지 않겠나?
누구나 천한 일거리는 하지 않으려고 할 터이니 말일세.
신분을 철폐하는 것도 문젤세.
지금 신분철폐를 외치는 이들도 실상은 신분 철폐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신분 상승을 바라는 것이거든.
이름 없는 한낱 작은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제각각 서열을 만들고,
동네 어린 꼬마들 조차 누가 시키지 않아도 위와 아래를 만들어 놀지 않는가.
지금의 신분체계를 무너뜨린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또다시 새로운 신분제도를 만들어 위와 아래를 둘걸세.
그것이 본능이야.
만약에 돈이 곧 신분이 되는 세상이 오면 어떨 거 같나?
난 그것도 비참한 건 매한가지 일 듯 싶으이."


용하는 절대 생각없는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생각이 많아서, 차라리 생각을 말고 사는 '척'하는 거지.
용하는 어디서건 매번 1등인 선준과 시문에 있어서는 천재적 재능을 지닌 재신을 늘상 부러워하지만,
사실 잘금 4인방 중에서 '머리가 제일 좋은 건' 용하일듯.
그리고, 산술은 그대가 제일 잘 하잖수.



 














걸오 문재신

 


" 이 좁은 방에 사내놈들만 우글우글 앉아 있으니, 갑갑해서 돌아 버리겠군. 더이상 소리 지르기도 귀찮으니까
너, 식이만 빼고다 나가라."

"식이?"

용하는 의외라는 듯 되물으며 윤희를 보았다.

재신이 제 주제에 어울리지 않게, 계집 같은 신입에게 무척 친절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그의 동물적인 감각이 이성보다 먼저 냄새를 맡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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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 형님, 가지... 말아요."

그녀의 두 볼에 눈물이 타고 내렸다.

"깨어서도 가랑 가랑 하면서 쫄쫄 따라다니더니, 꿈속에서도 넌 가랑만 찾냐? 왜 자꾸 성질이 나지? 제길! 확 집어던질까 보다."

하지만 거친 말과는 달리 불편하지 않게 고쳐안았다.
힘없이 축 늘어진 몸을 가로로 양팔에 안는건 많은 힘이 필요한데, 이 녀석은 사내 주제에 퍽이나 가볍다. 그리고 사내를 안은 느낌이 징그럽지 않고, 도리어 사랑스럽다.

"훗! 이러나 나도 진짜 남색이 되겠다."

재신은 대청에 윤희를 올려놓고, 낡은 짚신을 벗긴 뒤다시 안아 올렸다.

입에서는 쓸데없이 친절한 짓을 하는 자신에 대한 투덜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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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정랑의 목소리가 또다시 크게 퍼졌다.

"갑과, 탐화! 문재신!"

순간 재신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용하는 터져나오려는 웃을을 꾹 눌러 참았다.

그도 그럴 것이 탐화는 갑과에서 3등일 뿐이지만, 왕의 앞에 나가 소위 화동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화동 짓을 어울리지 않는 재신이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웃음이 나는 것이다.

분명 탐화는 이런 역할때문에 2등인 방안보다 오히려 영광스런 자리라 칭송하긴 한다.

하지만 재신에게는 쪽팔리는 짓에 불과하였다.

성균관에서는 하지 않겠다고 성질이라도 낼 수 있지만, 여기는 그러 수도 없기에 더 미칠 노릇이다.

용하와 윤희는 재신의 미쳐 날뛰는 소리가 생생하게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사실이 달갑지 않는 이가 어디 재신뿐이겠는가. 임금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필 덩치 크고 사나운 놈이 탐화라니, 이왕이면 김윤식이 구색에 맞았을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외양으로 이 자리를 정하는 게 아니니, 애석할 따름이다.
 

재신은 허리를 숙인 채 걸어서 인정전으로 들어갔다.
그래고 왕이 앉은 용상 아래에 최선을 다해 다소곳한 척하면서 섰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시건방진 자태는 숨겨지지 않았다.

대사헌은 제자식이 탐화가 된 것이 매우 기쁘긴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어울리지 않아 민망하긴 하였다.

"장원! 이선준!"

임금은 입이 찢어지려는 것을 애써 감추며 근엄하게 웃었다.

"잘왔다, 이선준."

그리고 손수 꽂아주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어사화를 내려 주었다.

그것을 재신이 받들어 선준에게로 가서 그의 복두에 꽂아주는데, 생전에 섬세함과는 담을 쌓은 놈이니, 경건해야 할 그의 손길은 거칠기 그지없었다. 자칫하다간 어사화를 두 동강으로 뚝딱 꺽어 버릴 것만 같아, 왕을 비롯하여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이더 조마조마하였다.

재신의 서툰 화동짓은 선준이 물러간 다음에 방안에게, 그리고 다른 급제자에게도 계속되었다.

용하는 놀리고픈 걸 참느라 힘겨워했고, 윤희는 행여 눈이 마주치면 웃음보가터질 것만 같아 입술을 깨물고 악착같이 땅만 보았다.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재신을 아는 모든 급제자들은 윤희와 마찬가지였다.

재신도 이들의 상태를 잘 알기에, 얼굴이 점점 더 붉으락 푸르락 변해갔다.

방방례가 모두 끝나고 왕이 물러가자마자, 용하는 자리에 주저앉아 겨우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끅끅! 타, 탐화, 걸오가 화동이라니, 미친말이 꽃을 든 꼴...........으으, 허리 끊어질 것 같아..........."

그러자 재신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로 그를 걷어차 버렸다.

하지만 이미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는 웃음들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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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준의 눈이 재신을 향했다.

그는 여전히 먼 산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대물 누님을 아내로 맞은 데에 대한 어떤 사내의 앙갚음이라고 여기라고."

"우리 누님은 정숙하여 다른 사내 같은 건 없습니다.!"

윤희가 대뜸 외치자, 갑자기 재신의 표정이 사납게 변했다.

"나!"

"네?"

"나 말이야, 나! 나도 너를,.... 아니, 네 누님을 아내로 맞고 싶었다고! 젠장!"

재신이 뜬금없이 내어 지르는 소리에 마당에 선 사람들의 동작이 얼어붙었다. 각자의 머릿속도 정지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참았던 감정을 분출시키고 만 자신에게 화가 난 듯 재신의 표정은 더욱 사납게 변했다.

선준이 당황하여 말하였다.

"거, 걸오 사형께서 대물 누님을 어떻게 아신다고..."

"알아야 혼인하냐? 대물이 마음에 드니까 그 누님도 좋겠다 싶었던 거지. 사내자식들이 농담도 구분 못 하고 싸늘해지기는..."

표정과 말꼬리에서 빠져나간 힘은 고스란히 제 주먹으로 옮겨 갔다.

재신은 그 주먹을 힘껏 펴서 윤식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사이 감정을 가라앉히고 애써 농담이 섞인 목소리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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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네 혼삿날이다."

재신은 밥을 뜨던 숟가락을 툭 떨어뜨렸다.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라는 말은 부친에게서 자주 들었지만, 이말은 생소하여 잘못들은 것인 줄 알았다. 어쩐지 요즘 부쩍 집에 들어오기가 싫더라니. 근수는 밥상을 끼고 앉은 재신에게 선 채로 말하였다.

"군소리 말고 장가가라. 신부 인생 망치고 싶으면 도망가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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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신은 다시 눈을 감고 윤희의 입술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훔치고 싶은 입술이 아니라, 그러기에는 몹시도 꺼림칙한 입술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이 부분은 선준과 공부한 부분이었다.

"염병할! 내가 가랑의 입술 따위를 기억할 리가 없잖아!"

재신의 뜬금없는 고함소리에 다들 어안이 벙벙해졌다. 정답을 생각해 내라고 하였더니, 같은 사내인 선준의 입술타령은 여기서 왜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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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신의 종이는 제일 먼저 왕의 손으로 옮겨졌다.

지렁이가 용쓰고 지나간 듯 엉망진창인 글자들! 왕의 이마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 흔적이 드러났다.

그런데 서서히 그 흔적이 사라져 갔다. 비록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술에 찌든 필체였지만 시문은 예상을 초월한 실력이었다.
두서도 없이 던져진 수십개의 운이 수십개의 문장으로 나열되고, 그 수십 개의 문장은 질서 정연한 하나의 시문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평소의 분홍 꽃잎이나 나풀나풀 띄우던 그의 시가 아니었다.

술기운이 오히려 그 분홍 꽃 가면을 걷어 내 버린 것이다.

'홍벽서? 문재신이 홍벽서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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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씨의 부러운 속삭임이 배경으로 깔렸다.

"젊음은 모든 여인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지만, 저 나이에 갖는 아름다움은 오로지 남편의 애정이 만들어 준단다. 사내들은 영원히 아름다운 부인을 소망하면서 그 소망이 제 하기 나름인 것을 몰라."

다운은 아주 잠시, 남편의 무관심 속에 있는 자신에게는 아름다워지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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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꼼수로 글을 짓는 자라면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문장가다. 어쩌면 나보다 한수 위일지도,"

재신의 목소리가 풀이 죽었다. 그의 어깨도 기가 꺽여 축 처졌다. 윤희가 웃으며 힘주어 말하였다.

"꼼수를 썼다 하여 걸오 사형보다 한 수 위의 문장이라 보기는 힘듭니다."

재신이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보았다. 선준과 용하도 차례로 훑었다.

그들도 윤희와 같은 의견이라는 표정을 하였다. 재신의 눈빛이 서서히 오만한 빛을 되찾았다.

"좀... 그렇긴 해. 나 정도의 문장이 이 땅에 있을 리가 없지.
 같잖은 글 실력으로 홍벽서 흉내나 내는 청벽서 따위가 나와 어깨를 견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암! 하하하."

아직 해결 난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는 모든 것이 해결 된 양 완전히 기분이 좋아져 싱글벙글 하였다. 규장각을 노린다는 사실보다는 자신의 문장보다 한 수 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더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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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수는 껄렁껄렁한 걸음걸이로 이조로 들어오는 아들을 발견하고 반가움에 환히 웃었지만, 금세 표정을 굳히고 태연하게 맞았다.

"규장각이 쓸모가 없다더니, 이 시각에 널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구나."

"아무리 쓸모가 없어도 이조만큼이야 하겠습니까?"

재신은 퉁명스럽게 대답하면서 비어 있는 자리중 아무 데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근수는 같은 방에 있던 녹사와 서리에게 나가라는 눈짓을 하고 손수 문을 닫았다.

"여기까지 온 걸 보니 똥줄이 바짝 탄 게지."

"아시는 거 있으면 털어놔 보시죠."

하지만 재신은 대답 대신 뒤통수를 탁 소리가 나도록 얻어맞았다.

"악! 뭐, 뭡니까. 갑자기?"

"옷 꼴이 그게 뭐냐?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꼴로 나타나? 인사권을 쥐로 있는 이조를 감히 뭐로 보고!"

"이 꼴로 사헌부에 가는 것보다는 낫죠. 아! 아무튼  아버지와 싸우려고 온 거 아닙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똥줄 바짝탔으니까 제 질문에 대답 좀 해주십시오."

문재신, 뭔짓을 해도 다 멋져. 다 귀여워. 딱히 어느부분을 고를 수가 없다.
재신이가 등장한 부분들은 북마크를 해두고 하도 무한히 봐대서 글자하나까지 모조리 외울지경.



이마를 괴고 있던 손이 떨어졌다. 그의 눈이 허탈함을 버리고 윤희를 쳐다보았다.


"논점을 '홍벽서에게 어떤 죄가 있는가?'하는 문제로 바꾸는 게 이번 회의의 관건이옵니다. 아울러 청벽서 등과 같은 다른 벽서들도 반드시 함께 묶으셔야 하옵니다. 이것이 성공하면 이 논쟁만으로도 시간은 충분히 끌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윤희도 덩달아 일어섰다.

왕은 책상을 둘러 윤희 곁으로 다가가 섰다. 그리고 귓속말처럼 속삭였다.


"방법은?"

'딱히 무슨 방법이 필요하겠사옵니까?
 더 바랄것도 없이 딱 평소대로만 하시옵소서.
 달변과 독설, 궤변에 있어서 만큼은 일당백이 아니시옵니까.'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상대가 왕인지라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상감마마이시라면 안 될 일이 없사옵니다. 논점만 바뀌면 뒤로 물러나 계시는 게 가장 중요하옵니다."


"너는.... 정말이지 고약한 놈이로다."




"똑똑한 년인 줄 알았더니 순 맹탕이군. 
넌 독한 게 어울려. 
나야 입만 열면 네 욕을 하느라 바쁘지 만, 아우들에겐 네가 좋은 모범이니까."   

빈정거리는 말투 속에 초선을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추월은 사흘이 멀다하고 사내에게 속아 우는 자신의 모습을 초선에게선 보고 싶지 않았다.


사랑보다 돈을 더 우선한다면 마음을 다칠 일은 없다. 그런데 조금 전의 그 유생에게서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나처럼 울지 마라"

"언니가 절 걱정해 주는 건 처음이네요."

"넌 이제껏 걱정스러운 짓을 하지 않았으니까.

 사내들이 그러지 않던-수염 없는 것들은 의리도 없다고. 특히 우리 기녀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무슨 말이에요?"

"난 의리없다.

 그 유생, 내가 먹어 버릴 테니까 넌 일찌감치 아서라."


초선은 처음으로 추월앞에서 환하게 웃었다.

어떤 의미로는 의리가 없는 것이 가장 의리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잘금 4인방

 


이 넷은 이날 이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장안 곳곳에,

여인네들로 하여금 오줌을 잘금거리게 만든다고 하여 '반궁의 잘금 4인방' 이라고 소문이 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훗날 이 소문을 전해들은 용하가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하게 되리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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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과 말을 맞추고 있는 내가 미쳤지."
_걸오

"자네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생각이 있어. 사흘 동안 자네와 절연하겠네!"
_여림

"그것 참 고맙군. 이왕이면 사흘이 아니라 3년으로 해주게. 30년도 좋고."
_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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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자식들. 까짓 영삭을 하려면 하라고 그래. 내가 그땨위에 연연할 줄 알......."

쫘악!

용하의 손바닥이 그의 뺨을 갈기는 소리였다.이번에는 제대로 맞았다.

"자신을 아끼고 감쌀 줄 좀 알게나. 그게 자네를 사랑해 주는 모든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날 사랑해 주는 사람? 그런 것도 있나?"

"나! 내가 아주 찐하게 자넬 사랑하고 있네! 잘됐군. 명륜당에 유생들 다 모이면 그곳에서 자네 입술 한번 빨아 보자고. 이왕 날 잡은거. 합구는 시시하니 구흡이면 딱 맞겠다. 내가 자넬 얼마나 사랑하는지 온몸으로 보여줌세!"

"여림사형! 지금 이 판국에 그런 농담이 나오십니까?"

"이 걸오 놈이 날 열 받게 만들잖아. 미안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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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안 막히게 됐냐? 그 돈 뒀다가 뭐해? 차라리 사람을 사서 보내지.
대물은 고사하고라도 몸 둔한 여림까지 끼운 이 일원으로 용케도 구해냈다.
옷 꼬라지를 고따위로해 가지고선."

용하는 밧줄을 풀려고 하다 말고 갑자기 손을 멈추었다.

"엇! 그러고 보니 우리 걸오가 꽁꽁 묶여 있군 그래."

그의 미소가 심상찮다. 재신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야! 너 왜 그래? 무슨 뜻이야, 그거?"

"으흐흐, 이런 기회는 또 없지. 어이 대물.그동안 쌓인 것 많을 텐데, 보복할 것 있으면 지금 하게."

윤희는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 됐습니다. 여림 사형이나 실컷 하십시오."

"음, 평소에 이놈한테 절대 할 수 없는짓이 뭐가 있을까?"

"야, 여림! 뭔 짓이건 했다간 봐라. 나중에 딱 그만큼 돌려줄 테다! 으읍!"

윤희, 순돌이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서서 경악하고 말았다. 용하가 재신의 얼굴을 강제로 잡고 그의 입술에 제 입을 진하게 맞추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란 나머지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잊어버렸다.

한참 만에 입술을 떼어 낸 용하가 돌처럼 굳은 재신을 보고는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남아 일언 중천금. 받은 것만큼 돌려줘야 하네. 어기면 미우이!"

"이, 이, 이, 미친 새끼가!"

.........

미쳐서 날뛰는 재신과 너스레를 떨며 그를 놀리는 용하를 보면서, 윤희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쥔 채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이런 대책없는 사내들과 앞으로 더 큰 일을 도모해야 한다니 까마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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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지금쯤 사주단자가 오가고 있을걸."

"뭐라고!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집안에서 자네한테 딸을 주겠다던가?"

"낸들 아나. 같은 소론 집안이겠지."

"안 돼! 그럴 순 없어! 걸오 자네는 나만의 것일세. 어떤 계집과도 나눠 가질 수 없네."

"아아, 또 지랄한다. 그 병은 약도 없냐?"

"사랑이 약으로 치유되는 것 보았나? 사랑은 사랑으로서만 치유가 가능하다네, 나의 사랑, 나의 걸오!"

"으악! 어째서 이자식과 계속 붙어 지내야 되느냐고.
 상감마마께오서 내게 억하심정이 계신게 아니고서야. 염병할."

" 이 부족한 나더러 더 부족한 세 놈을 돌봐 주시라는 상감마마의 뜻이 아니겠나.
 그것이 내 팔자거늘. 하하하"

용하의 웃음소리와 재신이 버럭버럭 내어 지르는 성질을 하늘은 넙죽넙죽 잘도 받아들였다.

그래서 두 사람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그들이 끊임없이 뱉어 낸 말싸움이 때로는 나뭇가지에 걸리고,때로는 말발굽에 차이고, 때로는 공기가 되어 보기 좋게 흩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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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니까요! 세 분과 함께 다니는 건 정말 싫다고요!"_윤희

"야! 이 조그마한 게 듣자 듣자 하니까 못하는말이 없어. 싫기는 왜 싫어?"_재신

"싫을 순 있겠지만 그렇게 까지 정색할 건 뭐 있는가?"_용하

"나도 싫다는 말은 좀 충격이오."_선준

세 사람의 원성을 한꺼번에 받으면서도 윤희는 자신의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이들의 행동이 오늘따라 더 유난스러워 이상하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네 사람이 함께 다니면 눈에 엄청 띄니까 그렇죠! 지금도 주위를 한번 보십시오."

세 사람은 동시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죄다 한 번씩은 쳐다보고 지나갔다. 아예 눈을 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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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선진들에게 선물하는 문제에 대해 물으면 선준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연설을 할 것이고, 재신은 버럭버럭 고함부터 지르면서 비리 척결을 외칠 것이 분명하였다.
윤희는 고고하게 굴어도 되는 배경이 있는 선준과 재신이 어쩐지 미워지는 것 같았다.

"부모님께 많이 감사드리세요."

심술가득한 그녀의 말에 선준은 의아한 듯 눈만 끔뻑거렸다.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미움 받았다는 느낌은 확실히 들었다. 이상하게 억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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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이 미친 게 아니고 가랑 자네가 미쳤구먼.

 염병할! 자네는 너무 튀어.

 가짜가 더 많은 무리에선 진짜도 가짜인 척 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고!"

그것은 한탄이 아니라 걱정이었다. 순수하게 당파를 떠나 그를 걱정하는 용하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을 담아 그를 포근하게 안으면서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앞으로 조정에 출사한 뒤의 그가 험한 길을 가지 않길 바라면서. 가문과 당에 역행하(게 될 그를 임금이 잘 보호해 주길 바라면서.

재신이 괴롭게 말을 씹으면서 입을 떼었다.

"벽파인 자네 부친을... 과연 이길수 있겠나? 뛰어넘을 수나 있겠나?난 이미 포기했는데....힘에 부쳐.

제아무리 이곳에서 개혁을 외쳐대던 유생들도 출사하여선 모두가 그 밥에 그 나물이 되어 버리는 것도 당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어서겠지."


드라마도 진작에 끝이났고, 책으로도 두번을 연달아 정독해버렸다.(다시 첨부터 또 읽었었다는;;;)
이젠 정말 미련을 끊고 그들을 보내주어야 할 때인듯.
이 책들에 대한 포스팅은 진작부터( 책으로 첫번째 정독을 끝낸 몇주전) 준비하고 있었지만,
웬지 이 글을 쓰고 나면 정말 그들과 헤어지는 기분이라(혼자 생각에;;)
미적미적이다가 이제서야 마무리를 한다.
당분간은 아마 성균관과 규장각의 잘금4인방을 능가할만큼 내 마음을 사로잡을 새로운 캐릭터를 찾을 수 있을거 같지가 않어.ㅠㅠ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첨부터 끝까지 다운받아서 그거나 다시 한번 봐야겠다.
그럼 난 이 이야기, 드라마로 두번, 소설로 두번, 총 네번 곱씹는 셈이 되는건가?;;;
이 이야기와 잘금4인방을 탄생시키신 저자 정은궐님, 존경합니다.
부디, 재신이 같은 인물이 나오는 소설 하나만 더 집필해 주십사.
아님, <정승이 된 잘금4인방> 이라도 어떻게 좀.

성균관유생들의나날.1(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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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정은궐 (파란미디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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