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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A (life&intrest)/reading

화홍 1부, 2부 - 이지환 역사 로맨스 소설

최근에 가방을 바꿨는데, 이게 사이즈가 좀 작다.
인터넷 구매의 실수.-_-
표기되어 있는 사이즈가 일반적인 책 사이즈보담 좀 크길래 

책 한권은 넣고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는데...가방 두께를 생각지 못했다.

책 한권 넣고 나면 다른 소지품을 모조리 포기해야 한다는.-_-
그래서 요즈음, 지하철에서 읽을거리로

mp에 넣어서 읽을 텍스트본을 이리저리 구해보고 있는데,
텍스트본은 아무래도 불법 유통의 위험소지가 크다보니,

괜찮은 읽을거리는 텍스트본이 흔치 않다.
아, 정말이지, 이럴때 스마트폰이 심히 고프다는.  
하지만 나는 아직도 8개월이나 기간이 남은  약정의 노예인걸.

 


얼마간 인터넷을 떠돌아 보니,

아무래도 텍스트본 읽을거리로 제일 많은 것이 로맨스 소설인듯 싶다.
그런이유로 요즘 로맨스 소설을 좀 읽게 되었다는.
인터넷 로맨스 소설이라하면,

각종 이모티콘과 인터넷체로 채워진 귀여니풍의 소설 정도를 생각했었는데,

내가 관심두지 않는 새에 이 분야도 무지 진화를 한것 같다.
정은궐님의 성균관,규장각 이야기도 원래는 인터넷 로맨스 소설이었던가 보더라고.
아직 성균관의 매혹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

모르는게 없는 우리의 친구 네이버 지식인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 성균관 같은 소설" 또는 "문재신 같은 캐릭터 소설" -_-
뭐 요런 검색어로 검색 검색 하다보니,

제일 많이 추천되어 있는것이 바로 이 "화홍"이었다.
즉, 매우매우 유명한 소설.
작가인 이지환님이 꽤 유명한 듯,

이분 소설은 실패없다고 자신만만하게 추천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더라고.
내가 평소에도 몹시 사랑하는 사극풍. 

게다가 아직 성균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로 더욱 당기더라 말이지.

줄거리는 너무너무 전형적인 것이어서 별로 흥미로울 것이 없었지만,
솔직히 말해 딱히 읽을게 없어서-_- 선택했었더랬지. 

지옥철을 함께 견디어줄 MP로 볼수있는, 간단한 읽을거리가 필요했던거라-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재미는 기대 이상-
역시 많은 사람이 재밌어 재밌어 하는건 웬만큼은 해준다니까.
초반엔 시큰둥하게 시작했는데 어느순간 푹 빠져서 읽었다.

허구인데 읽다가 가끔 '응, 근데 이 왕이 조선몇대왕이지?'싶은 엉뚱한 착각이 들었을만큼.-_-
줄거리는 뭐, 로맨스 소설이니까 연애이야기. 궁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리즈-라고 볼 수 있는데, 내가 가진 텍스트본은

화홍1,화홍2,화홍2부+연정만리,화홍2부+월하정인

이렇게 네개의 파일로 나누어져 있는데, 책으로는 어떻게 출판되어있나 잘 모르겠네-
하여튼 텍스트본을 기준으로 보자면

화홍1과 화홍2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이 시리즈의 기초가 되는 단국의 왕 욱제와 중전이 되는 소혜아씨의 이야기이다.
음, 전반적인 내용은 인현왕후와 장희빈이야기 생각하면 딱이라는.
숙종역에 왕 욱제, 인형왕후역에 중전 소혜, 장희빈역에 월성궁 희란이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뻔한 이야기이지만 재미의 포인트는 '왕의 성질머리' 되시겠다.
자존심세고, '욱'하고, 배배꼬인.....

그런데 생기기는 또 잘생기고 능력되주시는 왕이라....

승질 벅벅 내다가 은근히 귀여운 짓도 좀 해주시고 하는게 이 소설의 재미.
2부격인 월하정인과 연정만리는 1부에서 결국 맺어진 왕과 중전 사이에 태어난 여섯 아이들, 네 아들과 두 딸의 이야기.
난 성균관의 문재신부터 해서 승질 격한 사내 캐릭터가 영 좋은 모양이다.
여기서도 성질머리 일등 둘째 왕자 용원대군이 젤로 귀엽더란 말이지.
화홍 1부는 그냥 딱 인현왕후와 장희빈이야기니 그생각 안했는데ㅡ
2부의 왕자 공주들 이야기는 성균관마냥 드라마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다.
일단 잘난 남자 네명 등장해야하니까(왕자역 4명) 기본 인기몰이는 할것 같은데 말이지.
난관이 있다면, 로맨스물이고, 혼인을 기본으로 하는 이야기다 보니까, 남녀 상열지사;;;;이야기가 제법 들어있어서 음.... 좀 곤란할까나..?

 

 화홍 1부

 욱제(왕)+소혜(중전)

 

"짐이, 짐이...... 잘못하였다 하지 않니?

짐이 말이야. 얼마나 한 것이 많나 헤아려 보아라?

흥, 부원군 들어오시게 하여 주었지?

네 말대로 화봉이년 용서하였지.

음음. 월성궁 쪽은 고개도 아니 돌리었다.

어제는 대삼작 노리개 갖다 주었지, 쌍금가락지도 가져왔잖어?"

손가락까정 꼽아가면서 철없는 주상 전하.

어린 지어미 중전마마의 마음을 돌리려 했던 일을 줄줄이 꿰었다.

그런데도 지금껏 찬물 한 사발 얻어먹지도 못하고 내쳐짐만 당한 설움과 섭섭함이 겹쳐 목청이 절로 높아졌다.

 

"게다가 중궁전 내탕금 배로나 올려라 하였지.

내일은 일가친척까정도 보게 해주는데 너가 참말 이렇게 쌀쌀맞을 줄은 몰랐다. 흥. 짐처럼 하릴없는 사내도 없음이라,

날마다 짐이 비루먹은 개처럼 중궁전에서 외소박 당하는 줄은 천하에서 아무도 모를 것이다."

 

목청이 높아졌다 하지만 힘은 없었다.

힐끔힐끔 눈치를 보는 품이 잘못했단 말이야 하고 떼를 쓰는 격이었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저가 그 날 저지른 실책이 장하고 미안한 마음은 끝이 없었다.

위신과 체통을 잊을 정도로 민망한 짓을 한 것을 사실이며 어린 지어미를 상대로 하여서는 절대로 아니 되는 짓을 한 것도 사실이기에 끝내 저자세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더 잘할 생각이구먼. 그 맘도 몰라주니? 흥."
"날이면 날마다 변덕이 죽을 끓는 분이라.

아침이 다르고 저녁이 다르며 어제 한말과 내일 하신 행동이 다르니

대체 무엇을 믿고 살란 말인가? 신첩은 이제 몰라요.

그저 폐비시켜만 줍시오. 희망은 그것뿐이어요."
"원자 낳고 나가거라!"
"새 중전 얻으시어 원자 얻으실 일이지, 못난 박색 하냥 밉다 하시더니, 신첩 태에서 아기씨 얻어보았자 밉다 하실 것 아닙니까?"
"기가 막혀서! 짐이 얼마나 아기씨 바라는지 잘 알면서 감히 니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니?
원자 낳고 보자구나. 그때 소원대로 폐비시켜 줄 것이다.

흥! 잉태 잘하라고 보약 보냈으니 시각 맞추어 잘 마시란 말이다.

아니 마시기만 하여봐, 경을 칠 줄 알아라."

 

마음 속에 검은 물처럼 고인 말들을 한바탕 쏟아내고 나니 중전이나 왕이나 어느새 미운 정이다.

서로를 향해 눈 흘기고 입을 삐죽이며 세모꼴로 눈 치켜뜨고 앙살부리고

억지쓰고 떼를 부리며 골을 내는데 왜 그사이 몸은 한 무릎씩 더 가까이 다가간 것이야?

참으로 모를 일이지. 지분지분 손가락 내밀어 중전을 건드리는데,

그 손길 뿌리치며 새초롬이 돌아앉아 중전마마 상감을 한번 더 물어뜯어 말어?
곧 죽어도 싫다는 손 꽉 부여잡고 손가락에 끼여진 가락지 가지고 장난질 치면서 왕이 속터져 죽겠다는 목청으로 내뱉었다.

 

"당국서 바람을 공물로 바치란다."
"네에? 그것이 무슨 얼토당토아니한 말씀이셔요?"
"제길. 짐인들 아니?"

 

왕이 울컥 노화가 돋은 목청으로 내뱉었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분하고 모욕감이 사무쳤다.

하잘 것 없는 사신 놈에게 당한 수모가 뼈에 사무쳤고 나라의 힘이 약하여 짐이 이날 이런 모욕을 당하고도 입 한번 벙긋 못하는구나 싶어서 열불이
났다. "당국 왕이 짐을 망신주려 난제를 보냈구먼. 잘난 척 보란 듯이 사람들 앞에서 턱하니 내어놓으며 짐더러 풀어라 하는데......."
"그런데요?"
".......음음음. 짐이 지기 싫어서, 풀었다 큰소리를 쳤지."

 

도도한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것은 알았지만

스스로 감당도 못할 일까정 무조건 입 밖으로 내어놓고

뒤 수습을 하지 못하여 이렇게 끙끙 앓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이고, 이 어리석은 주상마마야.

중전은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격하고 성급하여 앞뒤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일을 치고 보자는 성미인지라,

중전 저한테 하듯이 조정 일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니 어찌 하명에 위엄이 설 것이며 중신들이 주상전하를 알기 진정으로 승복하여 두려워하겠는가?

 

"조하에 사람들이 몇몇입니까?

지혜롭고 학문 높으신 분들 많으니 난제쯤이야 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짐이 무엇을 걱정하니? 푼 놈들이 하나도 없음이니 그러하지.

대놓고 짐은 이미 다 풀었도다 하였으니 모다 짐 입만 바라보고 있더라.

젠장. 사신놈들이 떠나는 날이 사흘 후인데 그때에 답을 하여 준다 하였거든."
"답을 못 찾으시면 어쩌하시는데요?"
"......음음음. 저기 말이지, 짐이 좀 경솔하게 말을 한 것 같기는 하여."
"풀지 못하면 어찌 하시기로 약조 하셨나이까?"

 

캐묻는 중전 앞에서 한없이 면구하고 민망하였다.

중전 손을 놓고 왕이 바닥이 내려앉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어물어물 대꾸하였다.

 

"......짐이 관을 벗고 사신놈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기로 하였지 뭐."
"에그머니! 망극하여라."

 

저도 모르게 중전이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그러하여도 그렇지,

일국의 지존께서 천한 사신들 앞에서 관을 벗고 무릎을 꿇고 절을 하기로 하였다니. 이것은 주상 당신의 망신이고, 단국의 수치가 아니더냐?
왕이 중전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짐이 경솔하였지? 하고 자신없는 목청으로 되물었다. 그럼 잘했다고 묻는 것이니? 가능하다면 저 철없는 상감마마 면상이라도 한 대 쳐주었으면 싶었다.

 

"상감마마 위엄은 대체 어디로 간 것입니까?

일국의 지존께서 망신을 당함은 바로 아국의 망신이라. 어찌 그러하셨어요?"
"......순간적으로 울컥 하여서 그러했지 뭐. 아니 그 건방진 것들을 보았나? 아국이 저들보다 다소 약소국이라 하여도 그렇지, 감히 짐을 능멸하여 시험을 들게 해? 같잖게스리. 언제고 짐이 잘난 척 하는 당국 국왕 그 놈 수염을 잡아 뜯어버릴 것이다! 흥."

 

곧 죽어도 저가 잘못하였다곤 하지 않았다.

오로지 나라가 약한 탓, 상대인 당국 국왕이 음험하고 교활하고 같잖아서 그렇다고만 하였다. 이러니 평생 당신은 어리석은 어린애라.

중전은 기가 막혀 난리를 피우고 골을 내는 왕을 가만히 건너다보았다.

왕이 어깨를 들썩였다. 다시 울적하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곁눈질하면서 어물어물 손을 내밀었다.

 

"도와 주어. 비(妃)가 짐보다 영리하잖어.

부부지간은 일심동체라, 짐 마음은 곧 비의 마음이니, 요것을 달리 말하자면 짐이 망신당하면 비도 망신당하는 것 아니야?"
"아니, 이보셔요. 내전의 어리석고 멍청한 아낙네가 무엇을 안다고 주상께서도 풀지 못한 난제를 풀어낼 것입니까?"
"짐이 다 기억하고 있구먼. 간택 받을 적에 중전이 중신들 앞에서나 할마마마 앞에서 기가 막힌 계교를 내어 난제를 풀었다 하였잖어. 이번도 생각을 좀 짜내어 보아. 그대는 짐이 중신들 앞에서 망신스럽게 건방진 사신놈들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을 보고 싶으니?"
"......신첩이 생각하기 은근히 집히는 데가 있습니다만은, 이는 전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신 하답같사와요."

 

반쯤은 이미 풀었다는 말이었다.

반갑고도 고마워서 왕은 한 무릎 더 다가앉았다. 빨리 말하여 보라 보챘다.

여하튼 중전은 영리하거든? 지혜롭거든?

이것봐, 짐이 말하자마자 금세 턱하니 풀어내는 것이야.

요런 신통방통 꾀주머니를 곁에 두고 짐이 지금껏 엉뚱한 데서 난리를 피우고 있었고나.

 

"바람을 가져오란 말은 직접 바람 그것을 보내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사와요.

가둘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바람을 어찌 공물로 보낼 것입니까?

제가 생각하기로 당국에서는 바람을 일으키는 물건을 보내라고 돌려친 것 같습니다."
"허면 부채를 보내란 뜻이야?"
"전하의 말씀이 옳다고 보아집니다.

아국의 부채는 아름답고 질이 좋아 각 국에서 탐내하는 물건이 아닙니까?

그를 이르는 듯 싶어요."
"부채라? 바람을 일으키는 물건을 보내라?

이야아. 참으로 절묘한 하답이로구나? 비의 말이 참으로 신기하구나."
"부채를 찾아낸 분은 신첩이 아니라 전하이신걸요." 왕이 실쭉 웃었다. 괜히 기분이 좋아 흐흐거렸다. 하루종일 골치를 아프게 만든 난제를 절묘하게 풀어낸 중전의 답도 그러했지만, 부채란 답을 금세 가려낸 저를 칭찬하는 중전의 말이 곱고 기뻤다.
요런 고운 사람이 있나? 짐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슬쩍 돌려쳐 짐더러 답을 찾아내게 한 것이거든?
중전 손을 꼭 붙잡고 가락지를 가지고 장난질 치면서 다음 것을 물었다.

 

"하나 더 있거든. 똑같은 나무토막을 두고 아래위를 가려내라는 것이야."
"신첩이 읽은 경전에 보면 근본은 무겁고 말단은 가볍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흠, 짐도 읽은 글줄이다. 그래? 음, 어찌하여 보까? 아, 물에 띄워보면 알겠구나? 무거운 쪽이 가라앉을 터이니 그 쪽이 뿌리라 이 말이지?"
"성상의 말씀이 참으로 사리에 맞고 타당하여 보입니다."

 

한동안 가슴에 쟁여져 있던 체기가 쑥 내려갔다.

오장 육부에 바람이 드나드는 듯이 속시원하였다.

겨우 요런 것을 가지고 짐이 골머리를 썩였구나.

이제부터 난처한 것이 있으면 중전에게 물어보아야지.

왕은 흐뭇하여 금침에 바로 누웠다.

톡하니 야속하게 다정한 지아비 손길을 끝까지 뿌리치는 중전을 끝까지 끌어당겼다.

싫다 요동치는 작은 몸을 꾹 눌러놓고 팔베개하여 주었다.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으며 윽박질렀다.

 

"요것이! 뉘가 옷고름 푼다니? 짐도 반성하고 있다 하지 않았니?

비가 싫다 하는 일은 아니한다 이 말이다! 같이 침수나 하잔 말이다."
"......만날 말씀은 그러하시면서? 한번 속지 두 번 속나?"

 

말꼬리에 묻은 원망. 그래놓고 무작정 저 하고잡은대로 다 하시는 분이라. 그 변덕 어찌 믿나?

약조하시어도 나는 믿을 수 없고 싫소이다. 종알종알 잔소리하고 바가지 긁는 것이 사뭇 야무졌다.
말이 없고 어질다 하는 것은 순전히 거짓부렁.

끝까정 사람을 잡아채서는 매듭을 짓고 마는 짓거리가 매서웠고 당당하였다.

찬바람 나게 돌아누우면서 흥 하고 비웃음을 날렸다.

 

"혈서라도 쓰랴? 짐이 다 잘못하였으니 중전 뜻이 아니면 옷고름도 풀지 않으리라. 이렇게 쓰랴? 엉?"
"방금은 원자 낳으라면서요? 도대체 신첩에게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고? 장부일언 중천금이라, 헌데 우리 상감께서 원하시는 바라, 시시각각 장단이 하도 자주 바뀌니 신첩이 따라갈 수가 없나이다."
"흥, 아주 짐을 잡아먹어라? 짐더러 어쩌란 말이니? 허구헌 날 짐이 밤자리 안에서 중전더러 외소박 당하는 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지난 닷새동안, 너 짐한테 눈길 한번 주었니? 손가락 끝도 못 대게 하였잖어? 천지간에 너처럼 쌀쌀맞은 계집도 없을 것이다."
"......신열로 끙끙 앓는 신첩더러 침수시중 들라하시는 분은 그럼 잘하신 것인가?"
"하여 밤 내내 찬물 수건 갈아주고 탕제 마실 적에 단물 생강 접시 건네준 이는 그럼 누구
냐? 밤 내내 행여 불편할까 일어났다 잠들었다 하면서 보아준 사람은 또 누구더냐? 짐이 아니고 딴 놈이더냐?"

 

모든 것이 다 귀찮고 짜증나고 하릴없어 외면하였다. 왕 너가 무슨 짓을 하든 나는 상관 아니 할란다 하면서 찬바람 날린 것은 중전이되 사실, 밤 내내 곁에 붙어서는 아랫것들 다 물리치고 병시중 들어준 것은 왕이었다. 그 대목에서 입이 막힌 터라 중전은 입술만 꼭 깨물었다. 왕이 억센 팔로 휙하니 중전의 작은 몸을 자신 쪽으로 돌려 안았다. 머리타래 위에 턱을 얹고 주저리주저리 내뱉었다. 어찌 그리 야속한가, 사내 맘 따위는 도무지 몰라주고 보아주지 않아 애타는 심사를 반쯤 슬며시 들어보였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짐도 하여보까? 너. 짐더러 방탕하니 제멋대로 계집들 사이 날아다닌다 비난은 장하다만, 짐은 할말이 없는 줄 아니? 교태전의 정궁이라는 너가 손목도 잡지 못하게 하고 다가가기만 하면 자지러져서는 짐을 밀어내는데, 짐이 어쩌란 말이냐? 하물며 짐더러 눈 똑바로 뜨
고 다른 계집 찾아가라 하는 지어미라. 이래놓고 무어? 야아야, 그러지 말아라? 짐더러 살길 찾아놓고 밀어내라? 지금 너가 하는 일은 부덕높은 어진 중전 처신이더냐?"
"신첩이 언제 어진 중전이라 하였나이까? 매사 못나고 어리석은 폭비올시다."
"허면 날마다 짐을 외소박 놓겠다는 말이냐?"
"좋아라 하며 안겨드는 계집 많다면서요? 그리로 가시면 되지? 예전마냥 하시어요. 싫다 하는 이 계집 머리통 한번 쥐어박으시고 중궁전 기둥 걷어차고 나가셔요. 이젠 놀랍지도 않습니다."
"지, 짐이...... 언제 기둥을 걷어찼다고?...... 그, 그것은 한번뿐이잖어!"

 

지은 죄가 없다 말못하니 왕의 목청이 높아졌다가 다시 잦아졌다. 머리통 쥐어박은 것도 모자라서 여린 볼따귀까정 후려친 터라. 면구하고 염치가 없어 어둠 속에서 눈만 굴렸다.

 

 

 화홍 2부: 연정만리/월하정인

세자(1왕자)+연희
용원대군(2왕자)+수나
상원대군(3왕자)+율리
재원대군(4왕자)+을민
심온복+숙정(대공주)
강위겸+숙경(막내공주)

내가 왜 빈궁 하면 아니되어요? 하고 눈 똑바로 뜨며 앙칼지게 달려들었다.
눈물 글썽글썽한 딸을 바라보며 사친 황이가 한숨을 폭폭 쉬었다.
"안즉도 모르겠니?세자저하는 보통분이 아니니라. 이 나라 사직을 이어받으실 주인이시다.
그분의 안곁이 빈궁마마인데, 그 지엄한 자리를 너같이 배우지도 못한 말괄량이가 어떻게 감당하니?
게다가 세자저하께서 보령 장하시니 환궁하시면은 금세 가례 치르실 터이다. 너같이 조막만 한 어린것을
어떻게 빈궁 삼느냐?
손에 닿지 못할 분이시다. 다시는 외사랑에 나가지 말렸다!"
아직 어려 세자저하 짝이 될 수 없다함이 얼마나 기가 막히던가?
사흘을 내리 울었다. 슬퍼서 속상하여 울었다. 울다울다 병까지 났다.

매일 오던 연희가 아니오니 궁금증이 나신 모양이었다.
아파누었다 하니, 걱정히 된 모양이다. 일부러 초당까지 찾아오시었다.
"연희주러 연 만들었단다. 같이 날리자꾸나."
작은 손을 잡고 언덕까지 올라갔다.
해쓱한 얼굴을 한 연희를 바라보며, 이제는 왜 아니 놀러오니? 하였다. 영 섭섭한 얼굴이었다.
"아버님이 절더러 감히 빈궁마마 자처한다고 종아리 때렸사옵니다."
연희 아씨는 냉큼 무정한 아버지의 꾸지람을 일렀다.
눈물 글썽거리며 다정한 분에게 억울함을 하소연하였다.
"저런, 그러하였더냐? 도승지께서 대체 왜 그리 하셨을꼬?"
"저는 아직 어려 마마의 짝이 될 수 없다 합니다,마마.
나는 그대 범이 도련님하고 혼인하고 싶어요. 다정하고 친절하시니까요.
빈궁은 안 되어도 관계없는데 범이 도련님은 남 주기 싫어요.
내가 빨리 자랄터이니 나랑 혼인하여 주실 것이요?응?"
연희 아씨가 먼저 부끄럼 부리며, 난생처음 달달떨며 청혼하였다.
"인제 개구멍으로도 아니 나갈라오. 글공부도 열심히 하고 욕도 아니 할 것입니다.
허니, 내가 자라면 혼인하여주오.
내가 활쏘기랑 칼 연습 열심히 하여 마마를 지켜줄 것이다.
허니 나랑 혼인하지 딴 처자랑 혼인하지 마시오,응?"
빙그레 웃으며 한참 생각에 잠기셨던 세자저하.
영롱하게 반짝이는 눈을 들어 희망에 젖은 얼굴로 올려다보고 있는 연희 아씨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하마. 나도 너랑 혼인하지 다른 처자랑은 하기 싫구나.
이토록 귀엽고 솔직하고 맑은 이는 네가 처음이니라."
"참말이오? 약조하시었소. 참말 나랑 혼인하여 주실 것이지요?"
"오냐. 훗날 네가 자라면은 혼인하자구나.
허나 우리 혼인하기로 하였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하지 말거라. 또 종아리 맞을 것이다.
오직 너랑 나랑만 아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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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공주도 방그레 웃었다.
둘째 오라비 하는 양이라니. 허구한 날 잘나가는 한량답게 싸움질에 오입질에 하지 말라 하는 것은 다 하고 다닌다 하였다.
또 하지 말라하는 일을 친 것이야? 하였다.
헌데 알고보니 귀엽게시리 그 도도한 양반이 수줍게 외사랑이나 하고 있었다니.
....................
용원대군이 말 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거침없이 철벅거리며 물을 건너왔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술만 깨무는 아씨 앞으로 서슴지 않고 다가왔다. 왈칵 여린 팔을 움켜쥐었다 아이고머니나, 어머니! 담쑥 끌어안고 제 품에 담고는 딸기 같이 무르녹은 입술을 냉큼 훔쳐버렸다.

“이미 정분났다 소문 장하단다? 이래도 흉, 저래도 흉. 문을 잘 잠그고 살아야 할 것이다. 맘 내키면은 내가 밤에 달려들지 어찌 아느냐? 도도한 것이 꼴에 감히 나더러 호령을 해?”
“대체 어찌 이러시오니까! 한없이 소녀를 우세시키고 망신 주었으면은 되었을 터인데 어찌 또 이리 수모 주시느뇨? 이 소녀가 무엇을 그리 잘못하였소이까?‘

몸부림치며 유모를 불러보나 헛일이다. 통통한 주삿빛 입술을 이미 대군의 입술에 눌려 있으니 말이다. 바둥이는 여린 몸은 억센 품에 잡혀 있어 도무지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용원대군, 퍼런빛이 형형한 시선 치뜨고 수나 아씨 달아오른 낯을 내려다보았다. 네가 이기니? 내가 이기니? 그저 오기만 남은 형상이었다.
“너는 나하고 혼인하지 다른 사내하고는 못할 것이다! 도망가 보아라. 내가 게까지 아니 갈 줄 아니? 혹여 머리 자르고 비구니 된다할 지면 그 절 까정 불 질러 버린다. 엉? 도도한 머리통에 털날 때까지 가둬 놓을 테다. 쓸데없는 생각하였다간 네 집안 모다 풍비박산 낼 것이야. 네 누이들도 모다 너만치 망신주고 수모주어 혼사길 막아버릴 작정이니라.”
“너무 하시오! 대장부가 어찌 글 모지시오?”
“흥. 내가 대장부라 누가 말하더냐? 이 용원은 옹졸하여 소인배니라. 그 망신당하기 싫거든 한일 가만히 있다가 돌아오너라. 내가 너희 집에 매파 보내어 청혼할 것이다. 동짓달에 가례 치러주시오 하고 이미 어마마마께 말씀드리었다. 알겠느냐?”
“마, 망측하옵니다! 어, 어찌 소녀에게 이토록 큰 망신을 주심이뇨?”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항의하였다. 허나 겁 없는 용원대군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목소리 낮추어 음산학 위협하였다.
“니가 자꾸 내 말 거역하고 딴소리하면은 이대로 달랑 말에 태워 그대로 남궁 데리고 들어갈 것이야. 야합하고 뒷방 처자 만들어 줄 것이니라. 어찌하련? 정신으로 첩지 받고 대부인으로 살 것이더냐? 아니면 이 밤에 나에게 업혀가서 하찮은 잉첩으로 살 것이더냐?”
“참으로 무서운 그 말씀이 사실이오?”
“사실이 아니면은? 내가 귀한 밥 먹고 헛소리를 할 것이더냐? 내가 너를 그날부터 두고 본 지가 두 해거늘, 감히 도도하게 나를 거부해?”
수나 아씨 예서 다소간 헷갈렸다. 용원대군이 두해 전부터 저를 보았다 함은 바로 두 사람이 눈 맞춘 그날부터인 듯하였다. 인제야 다소간 이해가 되었다. 헌데 그러한 후에 언제 한 번이라도 신호를 보내었나? 눈짓이나 제대로 한 번 하였던가? 그 사냥꾼이 용원대군마마임도 이제 알았거늘 언제 저가 마마를 거부하였다는 말이더냐?
“소녀는 도통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날의 사냥꾼이 마미인 줄 어찌 알 것이며 언제 나더러 신호라도 보내셨소?”
“댕기도 주었다! 게다가 네가 낀 고 옥지환, 누가 주었더냐? 내가 주는 것은 전부 다 받고서 저는 딴 놈하고 혼담이라? 흥, 기가 막히어서. 내가 참말 고약하다. 사내 마음을 가지고 희롱함이냐?”
“소, 소녀는 댕기 받은 적도 없사옵고 옥지환이라 있는 것도 사친께서 생일이다 하시며 주옵신 것이거늘 그는 참으로 애먼 덫이라. 어찌 이리도 억지하심이 심하십니까?”
수나 아씨 비명을 질렀다. 비로서 용원대군 문득 얼굴을 벌겋게 붉히었다. 씩씩대며 야속하다 무정하다 난리를 쳤다.
“이, 이런 발칙한 것을 보았나? 네가 아주 시침을 똑 따는구나? 내가 말을 하여 보까? 병판 대감이 그 옥지환 줄 적에 내가 준 것이라 말 아니하시더냐? 네가 육의전 가서 옷감 끊을 적에도 그러하였다 대국에서 들어온 자주 댕기하나 받았기로 그는 내가 슬쩍 값 치른 것인데 의심도 않고 좋아라 가져갔잖느냐? 아니 그러하니? 대답 하여라!”
“아이고머니나, 어머니.”
듣자 하니 억지도 그런 상 억지가 없었다. 용원대군 하는 말에 기가 찻 아씨는 펄썩 바닥에 주저앉을 뻔하였다.
“이말 저말 할 것 없다. 어찌하였건 지금까정 내가 준 댕기 매고 돌아다니었으니 너는 이미 내 정표를 받은 게다. 허니 넌 내 사람이다. 억울하다 말하지 말거라.”
“댕기 가져가시오! 누가 달라 하였소?”
“이 건방진 계집 좀 보소? 내가 주면 저는 받을 일이지 무에 그런 잔말이 많은 게야? 입 다물고 듣기나 하여라. 내가 지금은 돌아가나 이레 후에 다시 네 집 앞 언덕에 낙 있을 게다. 필시 그때 나오너라. 아니 나오면은 내가 곧장 병판 대감댁 대문 차고 들어갈 것이다!”
이런 생떼, 무도한 억지는 참으로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다. 너무나 기막히어 수나 아씨??? 멍한 대군의 얼굴만 올려다보았다. 마치 입맞춤을 바라듯이 반쯤 벌어진 발간 입술. 대군은 사양치 않고 다시 한 번 세차게 물어뜯어 흔적을 남기었다.

말에 올라타더니 씽긋이 웃었다. 석상처럼 선 수나 아씨를 남겨두고 말고삐 당겨서는 아까 나나탄 것처럼 금세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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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오!”
“바쁘냐? 허면은 내가 이 꼬마 아기를 데리고 다니면서 궐 구경 시켜주련다. 한마디를 하여도 총명하니 잘 알아듣고 책을 좋아하시니 궁금한 점도 많은 터라. 너 볼일 보아라? 내가 아기를 맡아 구경시켜주고 정심각으로 뫼셔다 드리련다.”
울락불락하는 막내의 기색이 재미있어 상원대군은 일부러 더 기름을 끼얹었다.
“어마마마께서 저더러 안내를 시켰는데 왜 형님이 나서시오? 갑시다 그려. 궐이 넓으니 언제 다 구경을 하냔 말이야. 내가 저만 졸졸 따라디니는 종놈인가? 나도 할일이 많은 터인데 시각을 아끼어 저 때문에 고생하는 줄도 모르고…….”
그런데 저는 상원형님이랑 노닥거리기나 한단 말이야? 괘씸하도다! 손안의 보물을 빼앗긴 듯이, 제가 기르던 새 매를 남에게 가로채인 듯이, 침을 삼키며 익기를 기다리던 탐스러운 홍시감이 개골창에 퍽 처박힌 것 같이, 자꾸 부아가 나고 속이 상하였다. 들들들 속을 볶아대는 열분이 설익은 투기심인 줄도 모르고 재원대군은 애꿎은 을민이 더러 눈만 흘겼다. 종종 따라오는 병아리 걸음을 두고 느리다 타박하였다.
“그렇게 느리게 따라오면 언제 구경을 다 하노? 나도 나름대로 분주한 사람이단 이 말이지. 흥.”
성이 난 사람처럼 서너 발자국 떨어져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휙휙 걸어가 버렸다. 그를 쫓아가던 을민이 어린 가슴이 갑자기 서러워지기 시작하였다. 아까까지만 하여도 더없이 다정하던 대군이 딴사람인양 변하였다. 웃지도 않고 골만 퍽퍽 내었다. 넓은 등 뒤로 따스한 기운 대신 냉기만 폴폴날렸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여도 동동 하늘로 떠다니던 작은 가슴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하였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사람에게 갑자기 발로 모지락스럽게 걷어차인 듯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였는데……. 내가 무얼 잘못하였다고 말을 하셔야 잘못을 고치든지, 사죄를 할 것이 아냔 말이야.’
은근히 골도 좀 난 지라, 을민이는 야속한 눈빛으로 대군 등을 향하여 괜히 한번 흘겹았다. 대군은 대군대로 타박타박 따라오는 작은 발걸음소리를 헤아리며 여전히 홀로 분을 참지 못하였다. 틱틱 발부리로 길 위의 잔돌을 차서 튕기고 있었다.
‘누가 안 준다나? 그니깐 서책 나부랭이. 내 서고에도 그런 책이 산더미처럼 많다. 흥. 헤어질 무렵에 따로 보따리에 잔뜩 싸주려고 하였구먼, 내가 주나 봐라.’
등만 보고, 등만 보이고 그렇게 말없이 걸어가는 길. 아까는 먼 길도 가깝기만 하더니 인제는 지척인 거리도 멀기만 하였다.
궐 안의 풍광으로는 으뜸인 영회루 쪽으로 가던 길이었다. 갑자기 뒤에서 아이고! 하고 비명소리가 들렸다. 대군을 따라가려다가 그만 을민이 돌부리에 발이 거리어서 야무지게 엎어지고 만 것이다.
“아얏!”
깜짝 놀라 재원대군은 아기 옆으로 달려갔다. 어지간히도 깊게 찧은 듯 금세 얇은 치맛자락사이로 피가 벌겋게 배어나기 시작하였다. 넘어질 때 땅을 짚은 손도 이내 진득하니 핏물이 배어났다.
아픔도 아픔이거니와, 은근히 잘 보이고 싶었던 대군 앞에서 조신하지 못하게 홀딱 넘어지는 망신을 당하였다. 창피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말릴 사이도 없이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어찌 이렇게 경솔하니? 인제 내가 어마마마께 크게 혼이 나겠다. 어디 한번 보자구나. 많이 다친 것이야?”
“아, 아니옵니다, 괜찮습니다. 아, 아얏!”
“보자니깐! 상처가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하잖느냐?”
급한 김에 재원대군은 홀라당 을민의 치맛자락을 걷어 올렸다. 피가 줄줄 흐르는 지경이라, 상처가 어라나 깊은지 살펴보아야 치료라도 하지. 헌데 이 대목에서 생각해보니 외간사내에게 속살을 보일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급하게 을민이 대군의 손이 잡은 치맛자락을 꼭 부여잡았다. 죽자고 다시 끌어내렸다. 대군은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차켜 올리려 하고, 아기씨는 안 된다 바동대고…….
“안 되옵니다! 안 되옵니다. 엉엉엉.”
을민이 엉엉 울음을 터뜨렸을 때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젠장! 재원대군은 혼잣말로 상욕을 퍼부었다. 딱 오해하기 좋을 만하였다. 백주대낮에 대군이 아기나인을 자빠뜨려 놓고 희롱하는 광경이 아니야. 행여 누가 볼세라. 둘레둘레 살피니 다행이 인적이 드문 길이라 아무도 본이가 없는 듯하였다.
‘아고고, 큰 망신당할 뻔하였네.’
머쓱하여 그는 몸을 일으켰다. 앙앙 울고 있는 을민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울지 말란 말이야.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나더러 어쩌라고 이렇게 자꾸 우는 것이냐? 한참 동안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대군은 을민에게 잔등을 보이고 돌아앉았다. 퉁명스런 어조로 말하였다.
“업혀.”
“네에?”
“빨리 가서 치료를 받아야하지 않느냔 말이야. 너를 데리고 다닌 사람이 나인데 이렇듯이 다치게 하여 데리고 가면 내 체면이 대체 무엇 되니? 빨리 업히라니깐.”
“대, 대군마마 등에 업혀 가면 내 체면은 무엇이오? 훌쩍, 외간 사내 등에 어찌 업힐 것이오? 엉엉엉.”
“내, 내가 어찌 외간사내더냐? 어린 것이 벌써부텀 내외한다더냐? 당장 업혓!”
외간사내 아니면 무엇이오? 친척오라비도 아니고 지아비도 아닌데. 나이는 어려도 나또한 엄연한 양갓집 규수이거늘. 오늘 처음 본 사내 등에 어찌 홀짝 업히란 말이냐? 을민이 입을 삐죽삐죽 하였다. 슬그머니 대군의 얼굴을 훔쳐보았더니 난처한터인지 그 역시 얼굴이 시뻘겠다.
이렇게 대군을 옆에 두고 나동그라져서 울고 있다가는 백주대낮에 둘이 무슨 짓을 하다가 일 난 것이 아니냐고 망신날 것 같았다. 하지만 제가 업히면은 대군마마 비단의대에 피가 묻지는 않을까? 을민은 울기를 그치고 마지못해 살며시 상처 난 그 곳낒; 치맛자락을 들추었다, 버선 위에 무르팍. 시뻘겋게 쓸리고 돌부리에 찍힌 터라 아직도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재원대군이 쯧쯧 혀를 차며 소매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상처를 감싸 묶어주었다. 손을 내밀어 슥슥 을민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울지 말렴. 누가 보면 내가 울렸다 하지 않겠어?”
불퉁하게 하는 말에 을민이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군이 아까처럼 친절해진 것에 다소간 마음이 풀린 것이다. 그가 다시 쪼그려 앉아 등을 내밀었다.
“업히라니깐. 빨리 가서 약을 발라야 하지 않니?”
“……마, 망극합니다만 신세를 지겠나이다.”
을민이 망설이다가 자그마한 목청으로 인사하고 난 연후에 폴짝 대군 등에 업히었다. 난생 처음 업어본 소녀의 몸이 솜이불처럼 가벼웠다. 대군은 을민 아기씨를 업고 훌쩍 일어섰다. 서경당을 향하여 성큼성큼 걷기 시작하였다.
그 참 이상도 하구나. 업고 가면서, 업혀가면서 두근두근 콩닥콩닥. 넓은 등에 맞닿은 작은 가슴이 자꾸만 제멋대로 뛰놀았다.
대군 역시 등짝에 살그머니 느껴지는 봉긋한 가슴의 감촉에 어쩐지 피가 머리에 모이는 것 같았다. 가녀린 팔이 더 꼭 대군의 목을 끌어안았다. 꽃신신은 을민이 다리가 옆구리 좌우에서 간들간들. 손으로 받친 통통한 방뎅이가 요물딱조물딱. 어깨 옆으로 다가온 입술에서 다가오는 훈기가 귓불 근처에서 오락가락. 요것 참 난처하네. 아랫도리가 좀 뻣뻣해지는 것 같고 가슴 근처에서 답답한 열불도 좀 나고 눈앞이 다소간 노랗기도 하고……. 여하튼 무진장 이상하였다.
자꾸만 이마에서 진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이건 을민이를 업고 가는 일이 힘들고 수고로워서 그런 것이 절대로 아니다. 좀 야릇하고 하여서는 아니 될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재원대군은 을민에게 말을 걸었다.
“부원군 댁이 친척집이라면서?”
“예. 저의 아버님이 부부인 마님의 사촌 오라비올시다.”
“친척집이라서 불편치는 않고?”
“다들 잘해주십시다. 빈궁마마께서 입궐하신 이후로 집어 적적하였는데 저더러 귀염둥이가 왔다하여 어여쁘다 하시는걸요. 새 의대도 많이 하여주시고, 글공부도 가르쳐 주시고 고운 것들도 많이 하여주셨습니다. 시골에 형제가 많고 어머니가 병약하시어서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였는데요, 이리 도성에 와 있으니 저도 좋습니다. 난중에 빈궁마마께서 아기씨 뫼시고 피접 나오시면 저가 업어드리려고요. 저가 막내 남동생을 잘 보았거든요.”
소곤소곤 차분하게 말하는 목소리도 고울세라. 구슬 꿴 주렴자락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구나. 자기도 모르게 대군의 입술에 싱긋 미소가 머금어졌다.
“내가 가면 잘해 줄 것이냐?”
“그럼요. 헌데 대군마마께서도 부원군 댁에 나오십니까?”
“아니 꼭 그런 것은 아니고, 형님저하께서 나가시면 나도 한번 따라가 보려 하지. 참 아까 상원형님이 주신 서책은 말이지, 좀 어렵단다. 내가 내 서고에서 여인이 읽기 좋은 책을 골라 보내줄 터이니 난중에 너 나 모른 척 하지 말라?”
“아이, 어찌 모른 척 할 것입니까?”
말을 주고받는 사이, 아까 섭섭하였던 마음이 다 풀려버렸다. 어느새 허물없어졌다. 을민의 가냘픈 팔이 대군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대군 또한 힘차게 아기를 업은 팔에 힘을 주며 길을 넘었다. 어느새 부용정을 지나고 불일문이 보였다. 왜 길은 이리도 짧은 게냐. 할 말은 많지만 다하지 못했는데.
서경당 들어 아기를 내려놓으려니 어찌 그리 등짝이 허전한지. 을민 아기가 다쳤다고 수선피우며 나인들이 곁방으로 데리고 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제 사람을 남에게 낚아 채인 마냥 섭섭하였다.
그날 밤 재원대군은 난생처음 어린 소녀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해괴한 경험을 하였다. 오줌을 두 번이나 누었는데도 아랫도리가 근질근질하고 그 물건이 뻣뻣한 것도 같고……. 자꾸만 을민이 치맛자락을 끌어올려 상처를 살피는 동안 슬쩍 본 하이얀 종아리랑 속살이 생각나고. 또랑또랑한 검은 눈동자가 허공에서 둥둥 떠다녔다. 솜털 보송한 양 볼에 번지던 복숭아빛 홍조가 떠올랐다.
이것 큰일 났구나. 어찌하지? 그 다음날 아침 창피하게도 재원대군은 그만 몽정을 하고 말았다. 씽긋씽긋 웃으며 아지가 젖은 요를 갈무리하고 새 속 의대를 내어주었다. 돌아앉아 속바지를 갈아입는데 어찌 그리 민망하던가. 허나 곧 죽어도 꿈속에서 을민이 고 어여쁜 아이하고 입 맞추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리라!

소설에 등장하는 어투가 참 재미났다.
실제로 옛체가 저랬는지 어쨌는지 난 모르지만, 은근 중독성있는 말투랄까.
이 소설 몇날몇일 읽다보면 나도모르게 저 말투를 좀 쓰게 된다는거.

로맨스 소설이니 특별히 가슴에 남길만한 내용같은건 없고, 있다면 권선징악 정도?-_-
어쨌든 재미나게 읽기엔 좋다는.

난 이거 화장실에서 읽다가 넋놔서 변기에 두시간을 앉아있어버렸다는.-_-;;
2부의 내용을 보아하니 3부도 있을듯 한데, 아직 나오진 않은 듯 싶다.
3부나오면....아마 그것도 볼 것 같아.

화홍.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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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지환 (청어람(서경석),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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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홍.2:오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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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지환 (청어람(서경석),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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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홍.3:청실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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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지환 (청어람(서경석),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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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홍2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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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지환 (청어람(서경석),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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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홍2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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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지환 (청어람(서경석),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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